법원 “노태우 덕 본 SK, 최태원 이럴 순 없어”…노소영 ‘완승’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5.31 00:38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나란히 출석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연합뉴스 자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공판에 나란히 출석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연합뉴스 자료사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세기의 이혼' 항소심이 노 관장 승리로 끝났다.




법원은 노 관장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 성장에 기여한 부분과 더불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입힌 정신적 고통을 지적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2부(김시철 김옥곤 이동현 부장판사)는 30일 역대 최대인 1조 3808억원억원 재산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분할하는 동시에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기 위한 위자료로 20억원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을 선고하면서 50분에 걸쳐 구체적인 판단 이유를 상세히 읊었다.


재판부는 “1991년경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원고의 부친 최종현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종현 선대 회장의 본래 개인 자금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유형적 기여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던 자금' 실체를 어느 정도 인정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1991년 최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발행한 50억원짜리 6장, 총 300억원어치 약속어음을 언급하며 “300억원이 최종현의 태평양증권 주식 인수를 비롯해 선경기업 경영에 사용됐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자금이 외부에 공개될 경우 상당한 '리스크'가 발생함에도 최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과의 사돈 관계가 보호막이 될 것이란 인식에 따라 모험적인 경영을 할 수 있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만이 아니라 노 관장 기여도 상당 부분 인정했다.


최 회장 측은 자수성가형 사업가는 배우자가 주식 가치 증가에 기여한 점을 인정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승계상속 사업가는 그 반대라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종현 선대 회장 사망 후 20년간 최 회장은 자수성가형 사업가의 성격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고 긴 시간 (사업을) 해왔다"며 “주식 가치 증가에 노 관장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최 회장 스스로 노 관장에게 가한 '유책 행위'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재판부는 일단 최 회장이 동거인인 김희영 티앤씨재단 이사장과의 관계가 시작된 시점은 2008년 11월 이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2008년 11월 이혼했는데, 최 회장이 같은 시기 노 관장에게 보낸 자필 편지에 “내가 김희영에게 이혼하라고 했다.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하고 시킨 것"이라고 적혀 있는 게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이에 “이 기재 내용은 혼인관계의 유지·존속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고 결정적"이라며 “만약 최 회장이 노 관장과의 혼인 관계를 존중했다면 도저히 이럴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최 회장은 그 직후 세 자녀에게도 편지로 김 이사장과의 관계를 공개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당시 최 회장이 과거 횡령 사건 공범인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통해 김 이사장을 취직시켜준 점도 공개했다.


재판부는 “2009년 5월 노 관장이 암 진단을 받은 것을 보면 최 회장의 행동 자체가 노 관장에게 정신적 충격을 줬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2015년 김 이사장과의 혼외 자녀 존재를 외부에 알리는 과정에서도 유책행위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와 같이 상당 기간 부정행위를 지속하며 공식화하는 등 헌법이 보호하는 일부일처제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또 “이 사건 소송 초반엔 경제적 지원을 하다가 2019년 2월부터는 신용카드를 일방적으로 정지시키고 1심 이후에는 현금 생활비 지원도 중단했다"며 최 회장이 부양의무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 이사장과 티앤씨 등에는 다양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점을 봤을 때 1심 위자료 1억원은 너무 적다고 판단했다.


판결 이후 노 관장과 최 회장 측은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노 관장 대리인인 김기정 변호사는 “혼인의 순결과 일부일처제 주의에 대한 헌법적 가치를 깊게 고민해주신 아주 훌륭한 판결"이라고 반응했다.


아울러 “무엇보다 거짓말이 난무했던 사건이었는데 실체적 진실을 밝히느라 애써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반면 최 회장 측 대리인은 “재판의 과정과 결론이 지나치게 편파적인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의 뜻을 밝힌다"며 대법원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다.


대리인은 “상대방의 많은 거짓 주장에 일일이 반박 증거를 제출해 성실히 증명했다"며 “그러나 재판부는 처음부터 이미 결론을 정해 놓은 듯 편향적이고 독단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고 반발했다.


또 “단 하나도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편향적으로 판단한 것은 심각한 사실인정의 법리 오류"라며 “노 관장 측의 일방적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공개한 것은 비공개 가사 재판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자금 유입 등과 관련해선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뤄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며 “오히려 SK는 사돈의 압력으로 각종 재원을 제공했고 노 관장 측에도 오랫동안 많은 지원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1년 3개월에 걸쳐 1심 4배 가까운 약 3만 4700쪽 자료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안효건 기자 기사 더 보기

0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