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노, 샌드위치 연차 소진 방식 전개
장기화 할 경우 반도체 생산 차질 우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新) 경영 선언'을 한지 31주년을 맞는 7일, 삼성전자 창립 55주년인 올해 노동조합은 사상 첫 파업을 전개한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절체절명의 위기 의식을 갖고 약 2주일 간의 미국 출장길에 올라 노사 간 인식차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이날 연차 소진을 통한 파업에 나선다. 이 노조는 삼성전자 내 최대 규모의 근로자 집단으로, 조합원 수는 지난 3일 기준 2만838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사업 보고서 기준 삼성전자 전체 직원 중 22.74%에 달하고, 대부분이 반도체 사업을 영위하는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 소속이다. DS 부문으로 한정하면 전체 근로자 중 74.14%가 사내 최대 노조의 구성원인 셈이다.
업계는 전삼노의 투쟁 방식이 현충일(6일)과 주말 사이의 금요일에 하루 연차 소진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작년에도 주말과 현충일 사이에 수만명이 연차를 쓴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단체 행동이 계속 발생하는 등 파업 강도가 높아진다면 반도체 제품 생산 일정에도 타격이 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앞서 전삼노 측은 “아직 소극적인 파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차제에는 총파업까지도 갈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편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은 커다란 파고 앞에 놓여있어 위기에 봉착했다는 비관론이 지배적이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술과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에, 파운드리는 대만 TSMC에 한참 밀리고 있다. 또 미국 마이크론은 HBM 시장 점유율 20%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고, 종합 반도체 기업(IDM) 인텔은 왕년의 반도체 황제 자리를 탈환하겠다며 파운드리 시장 2위로 도약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교세라 출신의 일본인 고문인 후쿠다 다미오(福田民郞)로부터 '후쿠다 보고서'를 받고 1993년 6윌 '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주문했다. 같은 달 7일, 독일 출장 당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선대 회장은 “바꾸려면 철저히 바꿔라, 극단적으로 얘기해 농담이 아니야,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봐"라며 “삼성은 자칫 잘못하면 암의 말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 걸핏하면 불량품이 나오자 이 선대 회장은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경북 구미 사업장 운동장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불태워 없애라"며 500억원 규모의 '애니콜 화형식'을 단행했고, 임직원들로 하여금 손수 만든 제품을 해머로 부수도록 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글로벌 휴대 전화 시장에서 1위 타이틀을 놓친 적이 없으나 현재에는 각 분야에서 경쟁사들의 추월을 허용하며 '관리의 삼성'이라는 타이틀을 떼내야 하는 처치에 놓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자사 반도체 수장인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을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좌천시키고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을 DS부문장직에 기용함으로써 조직에 새 바람을 넣고자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 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언급했다.
현재 이재용 회장과 노태문 MX사업부장과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 최경식 북미 총괄 사장 등은 약 2주일에 걸쳐 분 단위의 미국 출장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5대 매출처인 버라이즌의 한스 베스트베리 대표이사(CEO)와의 회동을 시작으로 빽빽한 일정 30여건이 이달 중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이번 출장에는 총체적 위기 상황을 인적 네트워크로 타개하려는 이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실리콘 밸리 체류 중에는 DS 부문 미국 법인 '삼성 DSA'에 방문해 사업 전반을 점검한다는 계획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