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좀비기업 한전을 위한 변명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7.08 13:36
기후솔루션 정은호 수석자문위원 (전 한전경제경영연구원장)

▲정은호 기후솔루션 수석자문위원 (전 한전경제경영연구원장)

사실 한국전력의 경영위기는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마른 수건이라도 쥐어짜려고 안간힘인 한전 사람들에게 매맞을 소리일지 모르나 처음 겪는 것도 아니다.




비근한 예로 한전은 2010년을 전후하여 내리 5년 동안 당기순손실을 기록하였다. 누적 손실이 10조 원에 육박하였는데, 국제 자원시장의 슈퍼사이클로 발전연료 가격이 급등하였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위기에 정부는 전기요금을 모두 8차례에 걸쳐 43% 올렸다. 한전 위기탈출의 결정적인 계기는 연료가격의 하락세였다. 국제 자원시장이 2012년을 정점으로 내리막 추세에 들어선 것이다. 덕분에 전기판매수익의 63%까지 치솟았던 연료비가 30%대로 뚝 떨어졌다. 전기요금은 오르고, 연료비가 절반으로 줄어 위기탈출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내친김에 한전은 2016년 글로벌 전력기업 1위에 선정되었고, 주가도 사상 최고인 6만 원대 중반까지 올랐다. 그래서 47조 원의 영업적자도 때가 되면 지나갈 일이다.



지금 한전을 옥죄는 위기는 천수답 경영의 태생적 한계가 아니다. 탄소중립을 이루려면 전력산업의 탈탄소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재생에너지를 더욱 빠르게, 더욱 많이 보급해 석탄과 가스발전을 대신해야 한다. 문제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소규모 분산형 에너지가 재생에너지의 핵심을 이룬다는 점이다. 한전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한전을 정점으로 하는 우리 전력산업은 대규모 발전설비 중심의 중앙집중적 시스템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이 전력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선진적인 전력시장도 전통적인 대형 전력기업들이 죽음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 오래다. 한전이라고 전력산업의 환경변화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미래에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는 것도 당연하다. 그나마 값싼 전기요금에 목매단 정부 덕에 근근이 버티고 있다 할까.




얼마 전부터 낙후한 전력시장을 손보겠다는 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지난 20여 년의 손때로 이제는 손길만 닿아도 찢길듯한 상태라 반갑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전력시장 선진화의 배경이 재생에너지의 문제점이다. 재생에너지가 전력시장의 운영이나 전력계통의 안정에 기여한 것도 없으면서 혜택만 누린다고 한다. 그래서 질서 있는 태양광 확산을 위해 시장제도를 손보고 계통질서를 재정립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제도로는 우선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를 사실상 폐지하고 재생에너지를 입찰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재생에너지 출력제어도 '비중앙 유연성 서비스' 입찰시장을 도입하여 원인유발자 부담 원칙에 따라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계통질서를 위해서는 지난 6월 17일 계통관리변전소 205곳을 공개하였다. 계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해당 지역의 신규 발전사업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8월까지 유예기간을 거친다지만 호남지역의 태양광 사업은 31년까지 아예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시장제도로 불이익을 주고, 계통관리로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의 비중이 5%를 갓 넘겨 더욱 강력한 지원이 필요한데 완전히 거꾸로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라는 말마따나 알량한 지식과 정보는 제 밥그릇을 챙기려는 음흉한 속내로 오염되기 마련이다. 하여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그 진정한 의도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설령 좋은 의도를 가졌더라도 문제를 정확히 포착하지 않으면 또 다른 괴물이 태어날지 모른다.


위기는 기회다. 집단 이기주의나 무책임한 행정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들여다봐야 한다. 에너지전환에 발맞추어 시대에 뒤처진 전력산업의 독점구조를 바꿔야 한다. 뒤틀린 전력산업의 뼈대를 이루는 총괄원가제의 폐지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전기라는 재화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해야 한다.


새로운 발전의 물적 토대는 충분히 갖춰졌다. 필요한 것은 문제를 직시하고, 올바른 해법을 찾아 뚝심 있게 추진하는 용기다. 더 이상 미적거릴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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