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열대야가 기승이다.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에 잠을 설치다 깨면,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어 과습한 짜증을 식혀야 겨우 다시 잠들 수 있다. 이 때 에어컨이나 선풍기 스위치를 눌렀는데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잠시 기다려야 한다면 얼마나 참을 수 있을까? 아마 5초 이상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우연하게 수많은 사람이 동시에 스위치를 눌러도 지체없이 전력이 공급되도록 평균 수요보다 더 많은 발전소를 지어 예비로 공급을 준비시켜 둔다.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산업 및 운송 등 전 부문에서 필수에너지인 전기는 주로 석탄, 가스, 우라늄 등 다양한 연료로 생산되고, 전력계통을 통해 사용자까지 전달된다. 전기의 특성상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365일, 24시간 수요과 공급을 일치시켜야 한다. 수요와 공급이 잠시라도 일치되지 않으면 전기를 전달하는 계통이 불안정해져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발전소나 계통망을 건설하는데 5~15년이 소요되어, 수요 예측과 공급 계획을 미리 수립해야만 한다. 이에 전기사업법에 따라 정부는 2년 주기로 전력의 수요와 공급에 관한 향후 15년 계획을 수립한다.
지난 5월말 2038년까지의 청사진을 담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이하 '실무안')이 공개되었는데,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반도체 산업 투자 및 데이터센터의 증가 추세, 산업부문의 전기화 수요 등을 고려하여 2038년 목표설비 용량을 157.8GW로 전망하고, 이 중 신규 필요설비 10.6GW는 원자력발전, LNG발전, 무탄소발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해 제10차 대비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 신재생 및 수소∙암모니아의 발전량과 그 비중은 증가하는 반면, 화석연료인 석탄과 LNG의 발전은 줄어든다는 계획이다. 특히 산단태양광 활성화, 에너지저장장치(ESS) 조기 보강, 이격거리 규제 개선 등으로 태양광∙풍력 중심의 보급이 증가해 2038년 총 발전량 중 1/3은 신재생에너지가 담당할 전망이다.
향후 관계부처 협의, 공청회, 국회 상임위 보고 등 최종 확정을 위한 절차가 연내 진행될 예정인데,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을 조화롭게 확대한다는 전제 하에 전력계통 등 현실적 제약요건을 고려하면서 합리적이고도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재생에너지 및 원전 등 경직성 전원을 대폭 늘려 계통 부담이 가중되고 점차 강화되는 탄소중립 중간목표에 맞추느라 이론적인 계획일 뿐이라는 평가도 있다. 전기를 소비하는 기업 및 시민이나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사 및 전기판매자 모두가 이슈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평가는 갈려도 사회 구성원 모두가 반드시 인지하고 동의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역사상 기후위기가 가장 심각한 시점에 기후대응의 핵심 부문인 전력에 대한 장기 계획에 재생에너지 확대 반영은 불가피하다는 점과, 재생에너지는 지금까지 우리가 안정적으로 사용해 온 전기와는 달리 바람과 햇빛을 통제할 수 없으므로 동일한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추가 비용도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실무안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안정적인 계통운영을 위해 21.5GW의 장주기 ESS설비가 필요할 것으로 분석된 이유다.
우리는 80년대까지 원전 및 석탄발전 확충, 90년대 LNG발전 확충, 2000년대 들어 발전원별 믹스 조정을 통해 싼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이를 당연하게 소비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기후위기를 완화하고 수출바이어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가 본격화되어야 하므로, 과거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추가 비용을 인지해야 한다. 전기를 생산하는 사람도 간헐성에 기인한 생산비용 리스크를 인지해야 하고, 전기를 판매하는 사람도 계통안정성을 위한 추가비용을 인지해야 하며, 소비하는 사람도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기후위기비용을 인지해야 한다. 매년 심각해지는 열대야속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수급하고 싶으면서도 이를 위한 추가 비용을 외면하거나 덮어둔다면, 결국 가장 열대야가 심한 날에 잠에서 깨어 에어컨이나 선풍기 스위치를 다급하게 눌렀을 때 전기가 바로 공급되지 않는 날을 마주하게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