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주무부처도 답변하지 못한다.", “알면 알수록 미궁에 빠진다."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현장에서 아우성이다. 입법 취지를 들먹이며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하더라도 형사법의 생명인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결여된 법을 정의로운 법이라고 하지 않는다. 재해예방의 실효성도 없고 애꿎게 처벌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의를 참칭한 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내용과 절차로 제정된 결과이다. 더 큰 문제는 법의 모호성, 비현실성과 엄벌 공포에 기대어 자의적 법집행·해석이 남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법이든 형벌권 남용은 그 자체가 악이고 국가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이다. 이러한 폐해를 생각지 않는 것은 중대재해가 발생하기만 하면 경영책임자를 불법적 수단을 써서라도 어떻게든 범죄자로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폐해는 중소기업일수록 크다.
중대재해처벌법처럼 강한 처벌이 수반되는 형사법은 행정실무나 입법정책상의 필요만을 이유로 문언의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 수범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특히 문제 있는 형사법은 가능한 한 그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좁게 해석해야 한다. 그래야 악법의 폐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을 정비하기 전에라도 실체법적으로 법개념을 제한적으로 해석하거나 절차법적으로 엄격증명의 요구 등 절차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이러한 방향성을 갖지 못하면 법집행·해석기관은 실정법의 노예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고 악법에 부화뇌동하는 꼴이 된다.
그런데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정비하거나 법치행정을 할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지난 정부 때 제정됐지만, 현 정부는 야당 눈치 보기에 급급할 뿐 국민을 상대로 그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통 보이지 않는다. 수사기관에 막강한 권한을 준 이 법을 즐기면서 무분별한 법집행·해석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 대신 정부는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생색내기용 미봉적 정책만 양산하고 있다. 지난 정부 때부터 산재예방행정이 가성비가 형편없는 수준으로 전락됐지만, 현 정부는 전문성과 진정성의 부족으로 '고비용 저효과' 행정을 바로잡기는커녕 조장하고 있다. 위험성평가를 형해화시키지를 않나, 안전관리자를 벽돌 찍듯이 단기 속성으로 배출하지를 않나, 정체불명의 공동 안전관리자를 통해 사업주의 안전관리에 대한 책임의식을 약화시키지를 않나 그 아마추어리즘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이다.
산재예방 선진화를 위한 인프라의 핵심에 해당하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은 정부가 앞장서 추진해도 모자랄 판에 조직이기주의를 앞세워 반대를 한다. 비대할 정도의 방대한 행정조직으로도 산재예방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 담당자였던 고용부의 본부 국장과 과장은 고액의 연봉을 보장받고 대형 로펌에 들어가는 비상식적 행태를 서슴지 않았다. 공직을 로펌에 줄 대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도덕불감증이 놀라울 정도이다. 오죽하면 이 법을 '공무원 일자리 보장법'이라고 비아냥거리겠는가.
전문성과 진정성 밑천이 약할수록 엄벌에 의지할 가능성이 높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안전을 잘 모르거나 '잿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엄벌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전문성과 진정성이 있어야만 올바른 산재예방정책이 가능하다. 보여주기가 엄벌만능정책으로 나타난다. 엄벌만능주의가 권위주의 성향의 정부에서 많이 발견되는 이유이다. 처벌이 필요한 건 당연하지만, 정교하고 실효적인 예방정책이 처벌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