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美 반도체 쇼크에 SK하이닉스 현장 찾은 최태원
SK하이닉스 인수 때부터 반대·부정적 의견 정면돌파한 리더십
재계 2위 점프 원동력 … 이번에도 현장 찾아 기술력 확보 당부
HBM 시장 점유율 53%로 당분간 ‘꽃길’에도 치열한 고민 강조
CXL 분야 칼 가는 삼성전자, 업계 최초 개발 사례 등 맹추격 의식
SK하이닉스가 글로벌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 주도권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차세대 먹거리를 고민해야 한다며 현장 경영에 나섰다. 유력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역전을 노리는 상황에서 나온 행보인 만큼 이목이 집중된다.
6일 대만 시장 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 53%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엔비디아가 자사 인공 지능(AI) 칩인 'H100'에 SK하이닉스의 4세대 HBM인 HBM3를 탑재함에 따라 이와 같은 결과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엔비디아의 호퍼 아키텍처를 잇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인 '블랙웰'은 출시가 지연될 것으로 보이지만 여기에도 SK하이닉스의 5세대 HBM인 HBM3E이 탑재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꾸준한 엔비디아향 납품에 기인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와 2분기 각각 2조8860억원, 5조4685억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부터 AI 붐이 촉발됨에 따라 고속 데이터 처리와 저전력이라는 강점을 지닌 HBM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올해 수급 여건은 전년 보다 2%, 내년에는 1%, 2026년에는 0.7% 공급 부족이 점쳐진다.
글로벌 HBM 시장 규모는 2022년 23억달러에서 2026년에는 230억달러로 10배 확대될 전망이다.
백길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올해 4분기부터 HBM3E 12단 제품의 기여도 증가에 따라 업종 내 차별적인 실적 성장이 기대된다"며 “차세대 HBM을 포함한 주문형 메모리 반도체 시장 내 SK하이닉스의 입지는 지속적으로 강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때문에 당분간 SK하이닉스는 '꽃길'을 걸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편 이처럼 그룹의 효자 노릇을 하는 SK하이닉스는 인수 과정에서 그룹 고위 임원들과 투자자, 시장에서 숱한 반대 의견에 직면했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은 임원 회의석상에서 “SK의 미래 뿐만 아니라 국가 기간 산업을 위해 반드시 품어야 한다"며 “삼성이 반도체 시장에서 글로벌 탑 티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컨드 티어도 존재해야 하고, 그 결과 한국 기업들이 세계를 호령할 수 있게 된다"고 언급하자 임원들은 그제서야 생각을 바꿨다는 게 재계 전언이다.
이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2년 8월 13일,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6개월이 자난 시점에 “SK하이닉스를 더욱 더 좋은 반도체 회사로 반드시 키워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반도체 분야에 대거 투자한 결과 인수 10년 째 되던 날 시가 총액은 96조4603억원으로 6배나 뛰었고, 이로써 SK그룹은 단숨에 재계 2위로 도약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는 전날 경기도 이천시 소재 SK하이닉스 본사에 방문해 AI 메모리 분야 사업 현황을 점검했다.
현장에서 최 회장은 “ “AI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위기에서 기회를 포착한 기업만이 살아남아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며 “어려울 때 일수록 흔들림 없이 기술 경쟁력 확보에 매진하고 차세대 제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같은 발언은 21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컴퓨트 익스프레스 링크(CXL) 시장에서 설욕하겠다며 유력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절치부심하는 모습에 반응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CXL은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에서 중앙 처리 장치(CPU)와 함께 사용되는 △가속기 △메모리 △저장 장치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새롭게 제안된 인터페이스다. 기존 컴퓨팅 시스템의 메모리 용량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D램의 용량을 획기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
2021년 삼성전자는 CXL 기반 D램 메모리 기술 개발에 성공했고, 이듬해에는 고용량 512GB CXL D램을 개발하고, 차세대 메모리 상용화를 앞당겼다. 두 사례 모두 업계 최초 사례다. SK하이닉스는 DDR5 D램 CXL 메모리 샘플을 작년 8월에서야 개발했다.
때문에 최 회장이 현장 경영을 통해 구성원들과 만나 이처럼 언급한 것은 기술력 확보를 독려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은 그룹의 AI 밸류 체인 구축을 위해 국내외를 넘나들며 전략 방향 등을 직접 챙기고 있다"며 “AI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