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평가 공정” vs 국내 “주주가치 훼손”
합병비율·시너지 평가 두고 자문기관 엇갈려
SK이노 임시주총 앞두고 주주들은 갈림길에

▲SK이노베이션 CI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을 두고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와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는 찬성 의견을 제시한 가운데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는 합병에 반대 의견을 냈다.
곧 열릴 임시주주총회를 앞둔 SK 입장에서는 애가 타는 상황이다. 주권을 행사해야 하는 주주들 입장에서도 의결권 자문기관의 의견이 다르다보니 혼란스럽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스틴베스트 vs ISS…합병비율 유·불리도 엇갈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1일 서스틴베스트는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안건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다. 일반주주에게 불리하고 중장기적으로 주주가치가 훼손된다는 게 이유였다.
서스틴베스트는 합병비율(1대 1.19)에 대해 강하게 우려를 표명했다. SK이노베이션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이사회 결의일 기준으로 0.36으로, 이는 역사적 저점에 위치하고 있어 주식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SK이노베이션과 SK E&S 간의 합병비율이 SK이노베이션 일반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설정되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의 자산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시가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서스틴베스트는 이 점이 장기적으로 주주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최근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합병 비율 산정이 법적으로 규정된 방법을 따랐고, 기업가치 평가가 공정했다고 판단했다.
ISS는 SK이노베이션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반영한 합병비율이라고 판단하며, 합병비율이 적절하게 산정되었다고 평가했다. 합병비율에 대한 구체적인 우려보다는 합병 이후의 시너지 창출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다.
글래스루이스도 SK이노베이션의 현재 시장가치가 자산가치보다 낮아 시장가 사용이 적절하다고 보았다. 또한 자산가치를 사용할 경우 거래 상대방의 반대로 합병이 무산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해상충·시너지·공정성 등 모든 포인트에 다른 의견
이해상충 문제에 대한 접근도 달랐다. 서스틴베스트는 지배주주인 SK와 일반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합병가액 산정 기준에 따라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지분율 차이가 8%포인트 이상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반면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이해상충 문제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합병 시너지와 효과에 대한 평가도 달랐다.
서스틴베스트는 중장기적 재무구조 개선 효과와 사업 통합 시너지 가능성을 인정했지만, 이해상충 문제로 인한 일반주주 가치 훼손 우려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반면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안정적인 수익구조 형성과 재무구조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또한 현재와 미래 에너지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 구축에 긍정적이라고 판단했다. 글래스루이스는 S&P가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 전망을 개선한 점을 긍정적 근거로 제시했다.
합병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에 대한 평가도 달랐다. 서스틴베스트는 이사회의 합병 관련 논의 내용과 합병가액 산정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일반주주 권익을 고려하는 공정성과 투명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반면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합병 과정의 투명성이나 공정성 문제를 특별히 제기하지 않았다.
◇업계 “다른 의견이지만 틀린 의견은 없다"
이러한 의견 차이의 근본적인 원인은 각 기관의 평가 관점과 우선순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서스틴베스트는 주로 소수주주 권익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관점에서 평가했다. 반면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주로 경영 전략과 재무적 성과 관점에서 평가했다.
또 서스틴베스트는 한국 시장의 특수성, 특히 재벌 구조와 소수주주 권익 문제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보다 글로벌한 관점에서 기업의 전략적 결정을 평가하는 경향이다.
합병 평가의 우선순위도 달랐다. 서스틴베스트는 합병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소수주주 이익 보호를 우선시한 반면,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합병의 전략적 타당성, 시너지 효과, 재무적 영향을 우선시했다.
법적, 제도적 기준의 해석에 대해서도 서스틴베스트는 법적 기준 충족 외에 실질적인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조했지만,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법적 기준과 절차 충족에 더 중점을 두었다.
이해관계자 범위의 경우 서스틴베스트는 주로 소수주주의 이익에 초점을 맞췄지만,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주주 전체의 이익과 회사의 장기적 성과에 더 초점을 맞췄다.
재계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양측의 의견이 모두 일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M&A는 전략적 타당성, 재무적 영향, 주주 가치, 기업 지배구조, 그리고 법적 절차 준수 등 다양한 측면을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하기에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며 “단순히 재무적 성과나 법적 절차 준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게 이번 논란이 주는 교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내 기관은 서스틴베스트의 의견을 따르는 모양새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책위)가 22일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심의해 반대표를 행사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SK이노베이션의 2대 주주로 주식 보유량은 6.2%가량이다. 합병 반대 이유는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