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그룹 절반, 화학 부문 보유
업황 부진에 화학 부문 적자 지속
그룹 전반으로 재무부담 확대 흐름
화학 산업 노출도 클수록 매출 ‘뚝’
국내 10대 그룹 가운데 화학 부문을 주력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SK·LG·롯데·한화·HD현대 등 5개 그룹이 화학 업황 부진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화학 부문은 한때 각 그룹의 캐시카우였으나 최근 적자를 기록하면서 그룹 전반으로 재무부담이 확대되고 있어서다.
9일 한국기업평가의 '국내 주요 10대 그룹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화학 산업 업황이 저하되면서 화학 산업에 대한 노출도가 큰 그룹들은 화학 부문이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 감소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수익성이 낮아진 그룹은 삼성, SK, LG, 포스코, 한화, 신세계 등 6개 그룹이다. 이 가운데 SK, LG, 한화그룹의 경우 석유화학 부문 부진이 그룹 전반의 수익성 저하로 이어졌다.
최근 국내 화학업계는 △유가 하락에 따른 판가 하락 △중국의 석유화학 자급률 상승 △수요 부진 등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수요가 둔화하면서 매출이 급감하고 공급 과잉으로 재고가 늘어나면서 영업실적도 하락세다. 올해도 화학 사업 환경이 비우호적인 점을 고려했을 때 화학 부문 매출 비중이 높은 그룹의 사업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롯데그룹과 한화그룹이 대표적이다. 롯데케미칼은 올 2분기 영업손실 1112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0.8% 감소한 수준으로 3개 분기 연속 적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롯데케미칼은 롯데 그룹 내에서 유통·호텔 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그룹 내 주력 사업으로 각광 받았다. 하지만 석유화학 업황 부진으로 지난해와 올 1분기, 2분기에도 적자를 이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이주원 한기평 선임연구원은 “롯데그룹의 화학 부문은 스프레드 축소로 영업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외 석유화학 투자가 확대되면서 차입금이 증가해 그룹 전반의 재무부담을 높였다"며 “화학 부문은 글로벌 저성장 기조, 중국의 자급률 상승 등으로 과거 호황기 수준으로의 회복은 중단기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말 기준 롯데그룹의 화학부문의 총차입금은 10조원으로 전년(6조원) 대비 58.1% 급증했다. 올 1분기에도 잉여현금흐름 적자가 지속되면서 차입금이 10조9410억원으로 증가했으며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도 각각 72.0%, 31.1%로 상승했다.
이 연구원은 “롯데그룹은 재무부담 통제를 위해 화학부문을 중심으로 경쟁 열위 자산을 매각·철수하거나 해외 사업 확대 시기를 조정하는 등의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룹의 진행 예정 투자 규모는 여전히 작지 않은 수준으로 자산 매각, 차입 등 자금 조달 방법과 재무부담 추이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화그룹도 지난 1분기 그룹 전체 매출이 13조4612억원으로 전년 동기(12조862억원)보다 증가했지만 주력 부문인 케미칼 부문은 업황 부진으로 지난해에 이어 적자를 기록했다. 케미칼 부문 매출 하락에 지난 1분기 한화그룹의 영업이익률은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전년 동기 대비 2.3%포인트(p) 하락한 1.5%를 기록했다.
한국기업평가는 한화그룹의 신용도는 그룹의 주력 부문인 케미칼 부문의 실적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준위 한기평 수석연구원은 “그룹의 주력인 케미칼, 태양광부문 실적 부진, 높은 차입 부담 등을 감안할 때 그룹 신용도 하방 압력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케미칼, 태양광 등 주력 사업의 실적 반등 수준, 자구 계획을 통한 그룹 재무안정성 제어 여부 등에 따라 그룹 신용도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SK그룹도 그룹 주력사업인 정유화학부문에서 수익성이 저하되는 양상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77조3000억원, 1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일제히 감소했다. 4분기에 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약세로 적자를 기록하면서 영업이익률 역시 전년 대비 2.5%포인트 하락한 2.5%로 집계됐다.
LG그룹도 석유화학 부문에서 이익창출력이 약화되면서 지난해 그룹 전체 영업이익이 감소됐다.
올해 영업실적 역시 전년 대비 낮아질 전망이다. 석유화학 업황 회복 지연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 등의 실적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비핵심사업 정리와 합작법인(JV) 파트너사의 유상증자 등이 이행될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현금창출력이 확대되면서 실적 회복 가능성도 점쳐진다.
하현수 한기평 책임연구원은 “비차입 조달 방안이 적시에 이행될 경우 미국 내 합작 공장들이 순차적으로 가동을 시작하면 조정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1,5배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HD현대그룹은 화학 부문을 보유한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석유화학 부문의 부진에도 재무구조가 안정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석유화학 부문이 수익성이 하락했지만 조선·건설장비·전력기기 사업 부문은 수익성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김종훈 책임연구원은 “그룹 내 주력 사업부문의 업황 변동성이 작진 않지만 HD현대그룹은 조선·건설장비 그룹 등 3대 축이 균형을 이루면서 각 부문의 업황 변동성을 상호 보완하고 그룹 전체의 실적 하방을 지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