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조2000억원’…산업 스파이에 피멍 드는 K-산업, 처벌은 ‘솜방망이’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9.17 17:46

해외 기술 유출 사례, 2019년부터 꾸준히 증가세
대만, 간첩 취급·고강도 처벌…美, 최대 33년 징역

기술 탈취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기술 탈취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첨단 산업 경쟁이 더욱 격화됨에 따라 기술 유출 사고 규모도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에 대한 사후 처벌 수위가 타국 대비 낮다는 점이 끊임 없이 지적돼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지난 10일 중국 반도체 제조사 청두가오전(CHJS)의 대표이사 최모 씨와 공정설계실장 오모 씨를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임원 출신인 최 대표는 2020년 8월 중국 지방 정부와 공동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으로 있던 오 씨 등 반도체 전문 인력을 상당수 영입했다. 이들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의 핵심 기술을 탈취해 부정 사용해 산업기술보호법·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를 사고 있다.



이들에 의해 유출된 기술은 18나노·20나노급 공정 개발에 관한 것으로, 경제적 가치는 4조3000억원에 달한다는 게 수사 당국의 설명이다. 서울청은 추가 기술 유출이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며 이 사건에 대하 국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해 경제 안보의 근간을 뒤흔들었다고 규정했다.


이처럼 반도체·2차 전지·자율 주행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을 중심으로 해외로의 기술 유출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외국으로 산업 기술이 유출된 사례는 총 96건이다. 연도별로는 △2019년 14건 △2020년 17건 △2021년 22건 △2022년 20건 △2023년 23건으로 계속 늘어가는 추세다. 산업 스파이의 손에 넘어가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금액은 연 평균 약 56조2000억원에 달한다는 2022년 한국경제인협회 조사 결과도 있다.


첨단 기술력은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세계 각국은 경쟁 우위 확보를 위한 첨단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상대 국가의 산업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열한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행 산업기술보호법은 국가 핵심 기술 해외 유출 시 3년 이상 징역과 15억원 이하 벌금을 병과하고, 그 외의 경우 15년 이하 징역 또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첨단 기술 유츨은 국가와 기업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러스트=연합뉴스

▲첨단 기술 유츨은 국가와 기업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러스트=연합뉴스

하지만 산업계는 정작 실제 처벌이 미흡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1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처리된 1심 형사 공판 사건은 총 33건이다. 이 중 무죄(60.6%), 집행 유예(27.2%)가 대부분을 차지했고 재산형·실형 선고는 각각 2건(6.1%)에 불과했다.


재판부는 '지식 재산권 범죄 양형 기준'을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판단 근거로 삼는데 재계는 양형 기준이 낮아 상향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형 기준이 존재하지만 '형사 처벌 전력 없음'과 '진지한 반성' 등이 사실상 작량 감경의 요소로 작용한다는 게 최대 불만 사항이다.


2022년 대만은 국가안전법을 개정해 경제·산업 분야 국가 핵심 기술 유출을 간첩 행위로 간주해 처리한다. 이 경우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유기 징역과 최대 1억 대만 달러(한화 약 42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미국은 기술 유출을 6등급 범죄로 보고 0∼18개월까지의 형량을 정해뒀다. 이 외에도 피해액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상향해 최소 15년 8개월에서 최대 33년 9개월까지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마련해뒀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이를 의식한 듯 지난해 11월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해 법사위원회에 이관했다.


개정안은 기술 유출 행위자에 대한 벌금형 상한을 15억원 이하에서 65억원 이하로 상향하고, '산업 기술' 유출 행위에 대해서는 15억원 이하의 벌금에서 3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한을 높여 처벌을 강화함을 골자로 한다. 또 고의적인 산업 기술 침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 한도를 기존 3배에서 5배로 높였다.


법무법인 세종 관계자는 “산업 기술 유출·침해 행위의 범위가 확대되고 처벌이 강화됨으로써 이와 관련한 법적 문제나 대응의 필요성도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규빈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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