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칼럼] ‘삐삐’ 폭탄공격 당한 헤즈볼라와 끝나지 않는 중동 전쟁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09.25 11:03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2024년 9월 17일과 18일,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반이스라엘 무장 단체인 헤즈볼라 대원들이 사용하던 일명 '삐삐'라고 불리는 무선호출기와 무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여 약 3,000명의 조직원이 죽거나 다쳤다. 현재 사망자는 14명이나 중상자가 많아 피해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공격의 배후가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스라엘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로이터 통신 등 서방 언론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이 사태의 배후라고 레바논 고위 안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보안이 취약한 휴대전화를 추적해 헤즈볼라 주요 요인과 조직원을 제거하는 방식을 애용해 왔다. 이에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추적을 회피하여 작전 효율을 높이는 대안으로 구시대 골동품인 '삐삐'를 통신과 소통에 사용했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한 이스라엘이 헤즈볼라가 주문한 5,000대의 무선호출기에 소량의 폭발물을 비밀리에 장착했고 이번에 공격에 사용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은 가짜 무선호출기 공장 설립과 운영을 위해 약 15년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치밀함과 집요함, 그리고 헤즈볼라 제거를 위한 확고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이 공격 후 이스라엘은 20, 21일 연속으로 레바논 남동부와 수도 베이루트를 맹폭하며 헤즈볼라 제거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원수와 같은 존재로 1982년 결성된 이후 줄곧 이스라엘 타도에 앞장서 왔다. 더군다나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여 심각한 피해를 준 하마스를 지원하면서 이스라엘의 분노를 자초했다.


작년 하마스의 공격은 이스라엘의 9.11이었다. 이스라엘은 9.11 테러 충격으로 20년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인 미국만큼 충격과 분노에 치를 떨었다. 하마스 테러 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더 이상 대화를 통한 평화 모색을 포기한 것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이번 공격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의 전쟁 개입을 막으려는 선제공격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헤즈볼라 전체를 완전히 무력화하여 제거하기 위한 결전의 의지로 파악된다. 이스라엘도 이번 공격으로 민간인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다. 실제 이번 공격으로 어린이들과 민간인 여럿이 희생되었다. 국제 사회 일부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테러 행위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을 정당한 군사 작전의 일부이며 본격적인 군사 행동 이전에 적의 지휘부와 주요 조직원을 조기에 타격하여 위협을 최소화하는 선제적 정밀 유도 무기 공격이라고 판단하여 시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번 행동이 무차별 테러라는 비난을 아예 묵살하고 오히려 확전을 통해 헤즈볼라를 발본색원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각오가 아니라면 테러 행위로 비난받을 '삐삐' 폭탄이라는 기발하지만, 무차별적인 살상 무기로 공격을 시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불구대천지원수'인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어떻게 하면 조기에 마비시켜 제거할 수 있는지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터득했고 이번 공격은 전략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한다. 국가 존망이 달린 상황에서 국가 보존보다 더 큰 목표는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피해 때문에 비난을 받겠지만 국익 수호를 위해 비난을 감수하겠다고 결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으로 다시 한번 이스라엘 군과 정보기관의 우수함을 입증했고 앞으로 헤즈볼라를 비롯한 여타 세력이 이스라엘에 효과적으로 보복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완전히 제거하는 전과를 거두어도 결국 다른 반이스라엘 세력의 출현을 막지 못할 것이다. 중동의 비극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자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마스와 동조 세력을 응징하는 이스라엘이 아무리 이번 공격이 명분 있는 행동이라고 주장해도 일부 지나친 이스라엘의 행위는 만행으로 보일 수 있어 국제 사회의 비난과 외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런 보복의 악순환은 중동을 끝나지 않을 영원한 전쟁터로 만들 것이다. 이를 회피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가 필요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최근의 국제정세를 보면 이런 노력의 성과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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