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대출, 사전 고지·유예기간 없이
은행권 앞세워 돌연 한도 축소
“서민들 사지로 몰아넣어” 맹비난
국토부, 규제 잠정 유예 결정
정책대출 규제시 고금리 대출 감수해야
가계대출 관리 효과 없고 이자부담만↑
정부가 이달 21일부터 서민 주택구입용 정책대출 상품인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하겠다고 했다가 실수요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이를 잠정 유예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대로 된 공지 없이 은행권만 앞세워 서민 대출상품의 규제를 수시로 바꾸면서 실수요자들의 혼란은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기조가 정책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서민들이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도록 유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항의 빗발치자...규제 잠정유예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은행권에 이달 21일 시행 예정이었던 디딤돌 대출 한도 축소 등의 규제를 잠정 유예하라고 했다.
은행권에 '국토교통부 및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주택도시기금대출 취급 제한 협조 요청'을 발송해 디딤돌 대출의 취급을 제한하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진 지 불과 이틀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디딤돌 대출은 무주택 서민에게 저금리로 주택 구입 자금을 대출하는 상품이다.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인 무주택 서민들이 주택가액 5억원 이하 집을 대상으로 최대 2억5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신혼가구, 2자녀 이상 가구는 4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앞서 정부는 정책금융상품이 가계대출 증가세의 주범으로 몰리자 이달 21일부터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내용의 규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생애최초주택 마련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기존 80%에서 70%로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기존에는 주택금융공사보증에 가입하면 소액임차인을 위한 최우선변제금에 해당하는 소액임차보증금(서울 5500만원)을 대출금에 포함했지만, 21일부터는 이를 대출금에서 제외해 대출 한도를 축소했다.
여기에 준공 전 신축아파트를 담보로 하는 후취담보 대출도 중단하기로 했다. 후취담보는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 은행이 돈부터 빌려준 뒤 소유권 설정이 되면 이를 담보로 삼는 대출 방식이다. 후취담보가 중단되면 완공 예정인 새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실수요자는 디딤돌 대출을 받을 수 없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8월 8조2000억원 증가에서 9월 6조2000억원 증가로 증가 폭이 축소됐다. 다만 이 기간 디딤돌, 버팀목 등 정책성 대출은 8월 3조9000억원 증가한 데 이어 9월에도 3조8000억원 불어나며 유사한 기조를 보였다.
사전고지, 유예기간 없었다...정부 미숙대처에 신뢰성 '도마'
문제는 정부가 사전 예고나 유예기간 없이 디딤돌 대출을 취급하는 은행권을 앞세워 갑작스럽게 규제를 시행하기로 하고, 이를 번복했다는 것이다.
이번 유예 결정은 이달 16일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지적사안과 무관치 않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당시 국토교통부, 주택도시보증공사를 향해 “정부가 얼마 전에는 디딤돌 대출, 생애 첫 주택 대출에는 (대출 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하루아침에 안된다고 하면 어떡하나"라며 “유예기간도 없이 대출을 제한시켜 정부를 믿은 사람들을 계약금을 날릴 위기로 몰아넣는 게 말이 되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디딤돌 대출과 같은 정책상품은 정부의 지침이 나오면 해당 대출을 공급하는 은행들은 일괄적으로 수용하는 구조다. 만일 디딤돌 대출 한도가 줄어들면 실수요자들은 높은 대출 이자를 감수하고, 제2금융권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정부가 제대로 된 공지나 고지는 물론 유예기간도 두지 않은 채 정책상품 요건을 하루아침에 바꾼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디딤돌 대출은 서민 실수요자 지원상품으로, 집값 급등을 노린 투기성 대출과는 거리가 멀다"며 “향후 정부가 또 다시 디딤돌 대출 한도를 축소할 경우 시중은행이나 제2금융권에서 높은 금리를 감수하고 대출을 받아야 하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가계대출 관리 차원에서 정책자금 대출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식의 공식 발표를 생략하고, 은행권만 앞세우다보니 시장의 혼란이 가중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해당 제도를 유예했지만, 가계부채 관리 기조에 따라 은행권이 자체적으로 대출 문턱을 높인 만큼 실수요자들의 불편은 적어도 연말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올해 들어 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계속된 데다 기준금리 인하 이슈까지 맞물리면서 그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았던 디딤돌 대출에서도 한도 축소 등의 이슈가 나온 것"이라며 “금융권 전반적으로 적어도 올해 말까지 대출을 강화하는 기조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