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에게 승리했다. 당초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었으나, 트럼프가 경합주를 모두 쓸어감으로써 압승을 거두었다. 트럼프가 여러 가지 도덕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경제·이민·안보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반면에 해리스는 낙태 반대 외에는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정책이 없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 임기 동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경제 형편이 나빠진 데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이 컸고,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 장기화도 해리스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백인 남성 트럼프 대 흑인 여성 해리스의 대결에서 해리스가 완패한 것으로서, 백인 남성이 주류인 미국 사회가 여성 대통령, 게다가 흑인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정서가 표출되어 백인 남성표가 결집한 것도 트럼프 승리의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로서 해리스가 러시아 푸틴, 중국 시진핑 같은 강경 권위주의 지도자들에 대처하기에는 약하다고 인식한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바이든의 책임이다. 고령에 건강도 좋지 못한 바이든이 TV 토론에서 패배하여 후보를 사퇴함으로써 시간적 촉박으로 인해 경선을 통해 경쟁력 있는 후보를 선출하지 못했다. 또한, 트럼프 찬조연설자가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떠다니는 쓰레기 섬"이라고 표현하여 푸에르토리코 출신 유권자들이 발끈하면서 해리스가 호기를 잡았으나, 바이든 대통령이 쓰레기는 그(트럼프)의 지지자들이라고 말하여 오히려 트럼프 지지자들의 결집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트럼프는 선거 기간 내내 무분별한 이민자 수용, 중국 저가품 물량 공세, 세계 경찰 역할을 큰 문제로 지적하고, 이민 통제, 관세 부과, 전쟁 종식을 공언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라는 구호를 내건 트럼프의 당선으로 국제사회와 한국은 바이든 시대와는 다른 환경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우리로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첫 번째는 한미동맹과 방위비 분담 문제다. 트럼프도 중국을 최대 전략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역시 한미일 정상이 합의한 캠프 데이비드 선언 협력의 틀을 유지해 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의무를 보다 강조하고 동맹국으로서 미국 부담은 줄이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주한미군인데. 단지 북한 위협으로부터 방어뿐만 아니라 중국 견제 등 미국의 아태 전략으로 역할이 확대되어 있기 때문에 주한 미군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트럼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트럼프는 한국에 주한미군 배치에 대한 비용을 더 청구하겠다고 반복해서 말했는데, 방위비 마찰이 우려된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표현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라면 한국에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 6000억 원) 수준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했다. 앞서 한미 양국은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체결했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언급한 100억 달러는 한미가 타결한 2026년 방위비 분담금(1조 5192억 원)의 9배에 달하는 액수다. SMA 협정은 미국에서는 의회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행정 협정'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대통령 의지에 따라 폐기될 수 있다. 더구나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해 트럼프가 마음먹으면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부담할 새로운 방위비 분담액은 일본이 분담하는 방위비 수준과 비슷하기 때문에 과도한 요구에 대처가 가능하므로 너무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금물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는 보편관세를 매기겠다고 하고, 미국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세계 유명 반도체 기업의 생산 기지를 미국 내에 세우도록 하는 반도체과학법과 기후변화 대응 등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혜택에 대한 조치를 공언하였다. 관세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지만, 동맹국에도 부과하겠다고 하고 있어 우리의 대미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보조금·세제 혜택을 축소하거나 폐지한다면 한국 기업들은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외국기업 유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트럼프도 잘 알 것이고 사업가이다 보니 보조금을 막무가내로 축소하지는 않을 것이며, '거래적 관점'에서 타협점을 제시할 가능성도 있으므로 정부와 기업이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슬기롭게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