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령 자본시장부 기자
최근 금융감독원이 국내 기업들에 칼을 겨눴다. 국내 기업들이 주주들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합병, 유상증자 등을 추진하자 금융당국이 경고성 메시지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올해 들어서야 금융당국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늦은 감이 있지만 그 방향성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고려아연과 두산이 대표적이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실시한다고 갑작스럽게 발표했다. 차입금 상환을 목표로 한 대규모 유상증자 소식에 주주들은 반발했다. 주주가치 훼손, 불공정거래 의혹 등의 비판이 커졌다. 금감원도 다음날 바로 긴급 브리핑을 열고 공개매수 관련 부정거래 의혹을 적극 조사하겠다며 엄정 대응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유상증자 공시 이후 엿새 만인 지난 6일 금감원은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관련 증권신고서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현재 신고서의 효력은 중단된 상태다.
두산도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 합병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싸늘한 시장 반응에 합병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두산을 향해 정정 제출을 요구하면서 “증권신고서상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횟수에 제한 없이 무한 정정을 요구하겠다"고 작심발언한 것 또한 한몫했다.
일각에서는 금감원장이 직접 나서서 기업에 대해 발언하는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원장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감원장이 원장 권한을 넘어 본인의 의견을 외부에 지나치게 많이 이야기한다"며 “시정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경고가 시장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재계에서도 금감원의 적극적인 조치에 사뭇 놀란 눈치다. 시장에선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추진 계획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고, 두산의 합병안도 쉽게 통과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과 두산 사태를 본보기로 향후 다른 기업들도 주주들의 뒤통수를 치거나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선택을 쉽게 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경영 행태를 바꿀 절호의 기회다. 기업들은 더 이상 주주를 배제한 채 기업 가치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동시에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모색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