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7나노급 中 수출중단… 美 전방위 압박 본격화
SK하이닉스 우시 공장 전체 D램 생산량의 절반 담당
삼성전자 시안 공장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 수준
바이두·텐센트發 매출 급증 불구 전략 재검토 불가피
양사의 중국향 매출 각각 8조·32조 전년비 2배 증가
반면 글로벌 HBM 시장 93.5% 한국 기업들이 점유
미국의 對中 제재 기조 속 미·중 아우르는 전략 고심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생존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차이나 리스크'와 '미국 시장'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반도체 업계는 규제 강화를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TSMC의 '중국 손절'이 던진 경고음
11일 반도체 업계와 주요 외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가 중국 고객사들에 대한 7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의 AI 칩셋에서 TSMC의 반도체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AI 가속기와 GPU용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공문을 발송한 데 따른 조치다.
중국 기업들이 우회 구매를 통해 미국의 수출 통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후속 조치가 이어진 것이다. 이는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동맹국들을 압박하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특히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가 더 강력한 대중 제재를 예고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 수입품에 최대 60% 관세를 부과하고 최혜국대우 지위를 박탈하겠다고 공언했다. 맥쿼리는 이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중국 GDP가 2%포인트 이상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美 '높은 울타리' 전략에 한국 기업 압박
현재 미국은 'Small yard, high fence'(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전략을 통해 중국의 첨단 기술 접근을 원천 차단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에 핵심적인 특정 기술 분야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와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선별적 제재다.
현재 글로벌 HBM 시장의 93.5%를 점유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미국의 압박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AI 반도체 시장이 미국 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서 엔비디아, AMD 등과의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양사는 미국 칩스법(CHIPS Act)를 통해 각각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받을 예정이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 공장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패키징 공장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이러한 지원마저 불확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中 자체기술 속도전에 커지는 딜레마
미국만 상전이 아니다. 한국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중국의 자체 기술 개발 속도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웨이는 이미 7나노 공정을 자체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며, CXMT 등은 HBM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한국 기업들의 중국 시장 입지가 장기적으로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우시 공장에서 전체 D램 생산량의 절반을,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에서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 공장은 각각 2006년과 2012년부터 가동을 시작해 현지 협력업체 생태계도 잘 구축되어 있다. 특히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전기료와 용수 등 운영비용도 한국 공장 대비 30% 이상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상반기 양사의 중국향 매출은 각각 8조6061억원, 32조34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IT 기업들이 미국의 추가 제재를 우려해 구형 HBM2E 제품을 대거 구매하면서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중국의 'AI 굴기' 정책에 따른 수요 증가도 실적 개선에 한몫했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AI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韓 기업들의 생존법 - '투트랙' 불가피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장기적으로는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동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얘기다. 최고 수준의 기술이 반도체 패권의 '키'라는 점에서 엔비디아와 오픈AI 같은 선도기업이 있는 미국과 관계 유지가 필수다.
다만 중국 내 생산시설의 급격한 철수나 전환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구형 제품 생산은 유지하면서 첨단 제품은 미국 중심으로 공급하는 투트랙 전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SK하이닉스는 HBM3E 등 첨단 제품의 생산을 국내로 집중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미국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으로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대중 제재는 한국 기업들의 생존 전략에 결정적 변수가 될 전망"이라며 “이러한 상황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아며,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미국과 중국을 아우르는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