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중앙아시아 아제르바이잔의 바쿠(Baku)에서 제29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고 있다. 기후위기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효과적이고 가시적인 합의가 도출될 수 있길 바라는 국제사회의 기대와 달리 미국 트럼프 당선인의 파리협정 재탈퇴 선언은 국제사회에 실망감을 안겨 주고 있다. 향후 기후변화협약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파급력이 큰 또 다른 국제회의가 이번 달 25일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다섯 번째로 열리는 유엔 플라스틱협약 정부간협상위원회 회의는 해양환경을 포함한 플라스틱오염에 관한 법적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 이른바 플라스틱협약 체결을 위해 2022년부터 진행되었고 부산에서 마지막 회의를 통해 협약을 채택할 예정이다.
쉽게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 plastikos에서 유래한 플라스틱은 합성고분자화합물인 합성수지, 합성섬유, 합성고무를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 비닐, 페트병과 같은 합성수지류를 플라스틱으로 지칭한다. 플라스틱은 세계 경제의 필수적인 물질로 거의 모든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최근 20년 동안 연평균 36%라는 높은 성장세를 보이며, 2000년 2억 3,400만 톤에서 2020년에는 4억 3,500만 톤으로 증가했다. 2040년에는 2020년 대비 70% 증가가 예상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고, 2060년에는 폐플라스틱 발생량이 약 10억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사용되고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가? 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2년 발표한 세계 플라스틱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의 69%는 매립 혹은 소각 처리되고, 단 9% 만이 재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나머지 22%는 잘못 관리되거나 버려지고 있는데, 해양 쓰레기의 85%가 플라스틱으로 보고되고 있다.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은 해양 및 하천에 축적되어 생태계를 교란하고 유해 화학물질의 침출 또는 흡착, 생체축적 등을 통해 인류 건강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기후변화 원인물질인 온실가스 배출과 플라스틱 사용은 몇 가지 공통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둘 다 석유와 가스 등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1인당 국민소득이 많은 부자나라 일수록 배출량이 많다는 불편한 진실을 갖고 있다. 또한 2000년대 들어 중국, 인도 등 신흥개도국의 배출량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아울러 표면적으로는 환경문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어 감축에 따른 비용문제로 인해 기대와 달리 쉽게 줄이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새로운 대체물질 개발이 중요한데 기술의 진보 속도가 더디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국제플라스틱협약을 만들기 위한 과정은 쉽지 않다. 현재 협약 초안은 제시되어 있지만 재활용에서 답을 찾자는 플라스틱 생산국가와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필요하다는 소비국 간의 입장 차이로 진통을 겪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은 대량 생산이 아닌 잘못된 관리에서 발생하는 것이므로 재활용을 통해 해결할 수 있고 생산 감축은 불필요하다는 주장과 근본적인 플라스틱 오염문제 해결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는 생산 감축이 필요하며 2040년까지 2019년 대비 최소 30% 감축목표를 설정하자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양 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라 협상의 난항이 예상된다. 어떻게 해야 최종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1994년부터 협상만 30년을 이어온 기후변화협약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평가되는 교토의정서가 대표적이다. 1997년 당시 온실가스 배출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여 개도국을 제외한 선진국 중심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실천에 옮겼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이를 경험삼아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은 개도국과 선진국 모두 참여하며 모든 국가가 스스로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되, 목표는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국제플라스틱협약 역시 마찬가지다. 플라스틱오염의 종식이라는 국제사회의 공동목표가 있다. 그리고 협약은 목표 달성을 위한 글로벌 차원에서의 체계적 시스템 구축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플라스틱 생산국가나 소비국 모두 참여해야 하며, 스스로의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긴 호흡으로 각 국가의 여건을 고려하여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형태로든 플라스틱의 생산과 소비에 대한 규제는 결국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식품, 보건・의료, 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의 비용 증가를 가져오게 되며, 소비자 역시 가격 상승과 함께 플라스틱 사용 제한에 따른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이 커지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진통을 거치지 않고서는 플라스틱오염 종식이라는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세계 4위 플라스틱 생산국이자 세계 4위의 석유화학산업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은 회의 개최국이라는 부담감과 함께 채택될 협약이 국가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 등으로 매우 어려운 입장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규제는 피할 수 없는 국제 흐름이며,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격언이 있다. 모쪼록 부산에서 플라스틱오염 종식을 위한 역사적인 기념비가 세워질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