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공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국제 에너지 시장 전반에 대격변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에 비하면 찻잔 속의 태풍급이지만, 국내 수소 시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만한 일이 있었다. 지난 일여 년간 관련 업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청정수소 발전 의무화 제도(CHPS) 입찰 시장이 개설, 11월 8일 입찰이 마감되었다. CHPS는 한마디로 매년 일정 규모 이상의 청정수소로 발전된 전기를 전력 도매사업자(한전)의 의무적으로 구매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 위해 발전사업자는 청정수소 발전설비에서 생산된 전기의 kWh당 발전단가(고정비와 연료비)를 산정하여 입찰 시장을 통해 입찰하고, 다양한 비가격적인 요소 등과 함께 평가받아 최종 낙찰자로 선정될 경우, 향후 최대 15년간 청정수소로 발전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입찰결과는 다행히도 입찰 참여자가 없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주었다. 공기업인 4개 발전 자회사와 1개 민간기업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우선 남부발전과 남동발전은 각각 석탄화력발전인 삼척 그린파워 1호기와 인천 영흥 5호기에, 중부발전과 동서발전도 각각 충남 당진과 신보령에 암모니아 혼소발전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이들은 모두 외국산 청정암모니아를 발전 연료로 조달받을 예정이다. 반면 민간에서는 SK이노베이션 E&S가 중부발전과 광양 LNG 발전소에 충남 보령 생산 플랜트 産 블루수소 10만톤을 혼소하는 방식으로 참여하였다. 다만, 이 10만 톤 중 7.5만 톤을 소비할 광양 LNG 발전소가 보령으로의 이전해야 해, 발전소 이전 과정에서 풀어야 할 숙제들은 남아 있는 상태다.
한편 CHPS는 전력 도매시장의 특수형태인 동시에 국내 수소 경제를 진흥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라는 사실도 상기해야 한다. 물론 향후 다양한 시행착오를 통해 이 제도가 안착, 잘 운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염려되는 점은 제도가 잘 운용된다고 반드시 국내 수소산업이 성장하고, 국내 수소 경제가 진흥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 제도와 산업·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탈동조화(Decoupling)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CHPS는 단순히 '제도' 자체의 문제에서 벋어나 국내 수소산업 및 경제라는 큰 틀에서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CHPS 자체보다 국내에 직접적인 청정수소 생산을 보조하는 제도가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이 자국 내 청정수소 생산에 보조금, 세금공제, 차액지원 등의 다양한 형태로 재정적 지원을 직접 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렇다 보니 국내 청정수소 생산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청정수소 발전의 연료로 공급하여, 일정 보조를 받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지원책이다. 그래서 만일 지금대로라면 국내 청정수소 생산부문은 청정수소 발전에 연료 공급사로 참여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사실상 고사할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하다.
더욱이 이번 입찰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향후 청정수소 발전 입찰 시장은 석탄화력발전소를 보유한 국내 발전사들과 기존의 국제적인 대규모 암모니아 공급사업 간의 '연합' 중심으로 편성, 강고히 구조화될 가능성도 있다. 우려컨대 이 경우 국내 수소산업 및 경제와는 유리될 수도 있다. 국내 수소 경제 진흥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과 논의가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이를 위해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입찰 발전단가 상한을 국내 청정수소 생산 및 공급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설정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수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니 수소는 암모니아보다 비쌀 수밖에 없으며, 더욱이 국내 청정수소는 자국에서 재정적 지원을 받고 들어오는 해외 청정암모니아보다 비쌀 수 있다. 특히 국내산 재생에너지 연계 수전해 그린 수소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지금처럼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만을 고려해 입찰 발전단가 상한이 부여되면, 이를 기준으로 입찰 시장에 참가할 수 있는 연료가 결정, 그 문턱에 주로 국내산 청정수소, 특히 재생에너지 연계 수전해 수소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상한 설정 시 국내 청정수소 생산이 가능한 범위를 고려해야 하며, 특히 재생에너지 연계 수전해 수소가 도태되지는 않을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다른 국가들처럼 국내 청정수소에 대한 재정적 지원 방안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