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생산품도 특정 요건 해당 시 미국산 간주
삼성전자, 대 중국 HBM 수출 비중은 30% 미만
엔비디아를 포함 미국 빅 테크 고객사 확보 과제
메모리 부장 겸임 전영현 DS 부문장 ‘무거운 짐’
미국 정부가 중국을 비롯한 적성국들에 대해 반도체 제품과 장비 수출을 막아섰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역시 중국향 고 대역폭 메모리(HBM, High Bandwidth Memory)를 생산해 판매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최근 전열도 가다듬은 만큼 미국 주도의 글로벌 반도체 동맹 질서인 '칩4'에 더욱 입각해 HBM 경쟁력을 키우게 될 전망이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는 현지 시각 기준 지난 2일 중국을 포함한 24개 무기 금수국으로의 HBM·첨단 반도체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 개정안을 발표하고 관보에 게재했다.
특히 메모리 대역폭 밀도가 2GB/s/mm²을 초과하는 사양의 동적 램(DRAM) 반도체를 수출 통제 대상 품목으로 추가했다. 하지만 현재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HBM은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 스택이 이 기준을 초과해 사실상 수출 금지령을 내린 것이나 다름 없고, HBM3E(5세대)·HBM4(6세대) 제품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외에도 미국 정부는 첨단 로직·메모리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노광·식각·증착·세정 등 기존 29종의 첨단 반도체 장비에 더해 열처리·계측 장비 등 신종 반도체 장비 24종과 이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3종도 수출 통제 대상이라고 고시했다.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 측면에서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중국 소재 첨단 반도체 제조 공장과 반도체 장비 회사 등 140개 기업·기관을 우려 거래자 목록(Entity List)에 포함시켰다.
이번 미국의 수출 통제 조치에는 '해외 직접 생산품 규칙'(FDPR, Foreign Direct Product Rule)이 적용된다. 이에 따라 미국 외의 제3국에서 생산된 HBM·반도체 장비라도 특정 요건에 해당한다면 미국산 제품으로 간주돼 통제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해당 제품을 미국의 안보 우려국이나 우려 거래자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미국 상무부 허가가 필요하다.
산업부 무역안보정책과·반도체과 관계자들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상당수가 제품 설계·제조를 위해 미국이 통제하고 있는 미국산 기술·소프트웨어·주요 장비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FDPR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의 대 중국 HBM 수출 비중은 30% 미만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부가 미국을 위시한 '칩4'의 일원이라는 점을 감안해 삼성전자는 중국으로의 나머지 HBM2 물량 판매를 중단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HBM 경쟁력을 회복해 엔비디아를 포함한 미국 빅 테크 고객사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는 더욱 크게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31일,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실적 컨퍼런스 콜을 통해 “주요 고객사 품질(퀄) 테스트 과정 상 중요한 단계를 마치는 유의미한 진전을 이뤄냈고, 4분기 중 판매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김재준 당시 삼성전자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 메모리 사업부 부사장은 “4분기 HBM3E의 매출 비중은 50% 가량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HBM3E 8GB를 세계 최초로 대량 양산에 성공해 엔비디아에 납품하고 있는 점에 비춰 기술력을 의심 받는 가운데서 나온 것으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최근 위기를 공식 인정한 삼성전자는 절치부심하며 정기 임원 인사를 단행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전영현 DS 부문장(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임명하며 메모리 사업부장까지 맡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메모리 사업부 수장을 맡은 바 있는 전 부문장에게 힘을 실어줘 HBM 경쟁력 제고를 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범용 메모리 수요가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시점에서 전 부문장이 HBM 등 메모리 기술력 확보와 시장 주도권 탈환을 이뤄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