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막판 탈원전 정책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4.12.19 10:58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매우 묘한 시기에 발생하였다. 정권의 마지막 해였던 2022년이 되자 탈원전을 선언했던 많은 유럽 국가들이 원전을 건설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에너지가 부족해지자 탈원전의 선두주자였던 독일도 폐기하려던 원전의 재가동을 시도하였다. 영국은 원자력발전 비중을 현재 16%에서 2050년까지 25%로 올리겠다고 발표했고 일본도 당초에 폐기할 계획이었던 원전 3기를 재가동하기로 결정했다.




이태리, 스위스, 벨기에 등 탈원전을 선언했던 나라들이 기존원전의 계속운전을 추진하거나 신규원전 건설계획을 발표하였다. 불가리아, 체코, 폴란드, 네덜란드 등은 신규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소형모듈형원자로(SMR)이 대형원전을 건설할 수 없는 나라의 희망이 되면서 미국, 영국, 네덜란드, 중국 등 여러 나라가 각자 고유한 SMR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가 도입되면서 데이터센터 한 곳에 필요한 전력량이 원전 5기분에 달하고 그런 데이터센터가 5곳 이상 필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전에 대한 수요가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는 전력을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22년 유럽연합(EU)는 녹색분류체계(Green Taxonomy)에 원자력을 포함시켰다. 원자력이 친환경 에너지라는 것이다. 또 2023년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포함하여 무탄소 에너지를 현재보다 세 배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조짐은 2018년 송도에서 개최된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에서도 있었다. 지구온도상승을 1.5도씨 이내로 낮추기 위한 4가지 시나리오중 하나만 원자력을 현행대로 유지하는 것이고 나머지 3개의 시나리오는 적게는 50% 많게는 400% 더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바이든 정부도 첨단 원자력 즉 소형모듈형원자로를 전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탈원전을 선언한 시기는, 탈원전을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주장했던 나라들이 친원전으로 돌아서려는 바로 그 시기였던 것이다. 물론 우리보다 약간 먼저 탈원전을 선언하고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대만이 유일한 예외지만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다들 친원전으로 돌아서려는 시기에, 탈원전을 추진하고 있는 유일한 예외국가인 독일을 따랐다. 사실상 독일의 제조업이 높은 전기요금 때문에 숨이 막혀가고 있는 상황을 못 본 체 하면서 예외를 마치 좋은 사례인 양 포장하였다.




원전가동을 멈추게 하고 신규원전 건설을 하지 않으면서 태양광 발전을 턱없이 늘렸기 때문에, 가정용과 산업용 전기요금은 각각 50%와 70% 인상하였다. 한전의 부채는 1백조 원에서 2백조 원으로 늘었다. 꼭 그 때문은 아닐지 모르지만 마무리가 되어가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수출은 멈춰섰고 영국 원전수출에서는 우선 협상자 지위를 상실하였다.


그간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국내에서는 신한울3·4호기 건설이 5년간 중지되었고, 천지1·2호기와 대진1·2호기는 백지화되었고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원전부품 공급망이 일부 붕괴되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웨스팅하우스이다. 미국내에서 40년간 원전건설을 하지 않다가 4기의 원전건설이 정부지원하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보글3·4호기는 7년의 공기지연 끝에 지난해와 올해에 준공되었고 VC 서머2·3호기는 건설하다가 중간에 포기하였다. 그 결과 웨스팅하우스는 도산하였고 소유자였던 도시바는 헐값에 이를 캐나다의 헤지펀드에 매각하였다. 문제는 웨스팅하우스를 놓고 도시바와 수주경쟁을 하였던 우리나라 두산중공업이 탈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고 2천 명 감원, 두산건설 매각, 산업은행 1조원 차입경영을 할 때였기 때문에 구매에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월성1호기을 조기 폐쇄하여 2조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고 한빛3·4호기를 5년간 정지시켜 10수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였다. 그보다 더 한 것은 신한울1·2호기의 준공이 2년여 미뤄지고, 신한울3·4호기 건설이 5년 지연되면서 발생하는 손실이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 손실이 발생했다.


득도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많은 국민이 원자력을 지지하게 된 것이다. 원자력 사회는 국민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원전 안전성에 대한 폄훼를 극복하고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에 대한 확실한 오해불식 등을 통해 원자력에 대한 재인식이 미래 원자력 산업의 나아갈 길을 평탄히 해주었다. 이제는 안보와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영역에 무지한 정치의 간섭을 막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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