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 진전'을 언급하면서 내년 기준금리 인하에 속도 조절을 시사한 것은 앞으로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인플레이션에 다시 집중하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연준은 식어가는 미국 노동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지난 9월부터 금리 인하에 나섰지만 물가 둔화가 정체되자 '인플레 파이터'라는 책무로 무게 중심을 옮긴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발표될 미 소비자물가지수(CPI) 등 물가 지표에 다시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연준은 18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시장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지만 내년 금리 인하 전망치는 대폭 줄이는 '매파적 인하'를 단행했다.
9월 당시 점도표(연준 인사들의 기준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도표)에서는 내년 금리 인하 횟수를 0.25%포인트씩 4차례 정도로 봤지만, 이번에는 2차례 정도로 줄인 것이다.
지난 7월 고용보고서에서 미국의 고용시장 냉각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된 것이 확인되면서 연준은 노동시장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고 9월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를 단행했다.
연준은 그 이후 11월과 12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씩 내렸지만 이기간 인플레이션은 반등했다. 실제 CPI 상승률은 지난 7월 2.9%를 기록하면서 2021년 3월 이후 3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2%대로 떨어졌고 9월에는 2.4%까지 하락 추이를 보였다. 그러나 10월에 2.6%로 반등하더니 11월엔 2.7%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연준이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지을 때 눈여겨보는 지표인 근원 CPI 상승률 역시 지난 7월 3.2%를 보였지만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연속 3.3%에 정체됐다.
이런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취임을 하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뛰어오를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와 감세 정책은 물가 상승을 자극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를 반영하는 듯 이날 FOMC 성명은 “올해 초부터 노동 시장 상황은 전반적으로 완화되었고 실업률은 상승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낮다"며 “인플레이션은 위원회의 목표치인 2%를 향한 진전을 이뤘으나 여전히 다소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성명은 또 “금리의 목표범위에 대한 추가적인 조정의 폭과 시기(the extent and timing)를 고려할 때, 위원회는 지표와 전망, 위험 균형을 신중하게 평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는데 '폭과 시기'라는 문구가 새로 추가됐다.
이는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금리 인하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해 매파적이란 반응이 나온다.
연준은 또 내년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지난 9월 2.1%에서 2.5%로 상향했고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도 2.0%에서 2.1%로 높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기자회견에서 “추가 금리 인하를 고려할 때 인플레이션 진전을 보겠다"며 “12개월 기준 물가 흐름이 횡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월 의장은 이어 “사람들은 여전히 고물가를 체감하고 있다"며 “우리가 그들을 위하 할 수 있는 최선은 인플레이션을 목표치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연준이 다시 인플레이션 지표에 집중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구겐하임 인베스트먼트의 파트리시아 조벨 거시경제 리서치 총괄은 “위원회는 확실히 인플레이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이들은 물가 안정이란 책무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린 캐피탈의 콘래드 데콰드로스 선임 경제 자문도 “인플레이션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 한 추가 금리인하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선물 시장에서도 다음 FOMC 회의인 내년 1월 28~29일 기준금리가 동결될 확률을 91.4%로 반영하고 있다. 전날(81.6%)과 비교하면 대폭 오른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