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 Veracone 투자컨설팅 대표
계엄이 무산되고 50일이 지나 간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 수괴혐의 피의자로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임기 중 수감되는 불명예와 한국 민주주의의 흑역사를 기록했다. 국가의 수장이 공백인 상황에서 대한민국 경제라는 배는 표류를 하고 있다. 계엄사태 후 원달러 환율은 1430원에서 1460원대로 30원 이상 올랐다. 그 여파로 한국은행 물가통계에 의하면 12월 15일 현재 경제 성장률은 0.6%에 그치고 물가는 2.4% 넘게 올랐다고 한다.
계엄이 선포되고 무산된 다음 날 경제수장 F4들이 모여 경제의 혼란을 막기 위한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결의했다. 한은은 12월 한달만 RP(환매조건부채권)를 47조나 매입하면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였고 계엄이후 1월 10일 현재까지는 62조원의 RP를 매입하였다. RP는 금융기관(보통 시중은행)이 단기간 수급의 불일치로 한은에게 빌리는 7-14일짜리 단기 채권이다. 한은은 이 RP 매입을 통해 해당은행의 유동성을 지원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보통 한은의 통화공급 조절은 금리로 하지만 현재처럼 금리를 내리지도 올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RP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RP는 보통 비상시에 많이 쓰는 정책이다. 과거 RP의 발행이 늘었을 때는 2008년 리먼사태 때 19조, 코로나 때 42조가 가장 많았던 때였고 보통은 2-3조의 발행 정도만 유지된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건전재정을 강조하고 세수가 마이너스가 나면서 시중에 화폐 유동성이 줄어들자 22년 27조, 23년 51조 그리고 작년에는 106조원이 발행되었다 이중에 거의 반인 47조가 계엄이후 발행된 액수다.
세계는 트럼프 2.0 시대 관세 인상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앞다투어 금리를 내리고 환율을 평가절하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내수의 부진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 시기에도 금리를 동결했고 미국이 9월부터 금리를 100bp 내렸지만 우리는 겨우 50bp 정도 인하에 그쳤고 이번 달에는 동결을 한 상태다. 미국이 작년 9월 50bp의 공격적 인하 이후 3달 만에 100bp 금리를 인하하자 올해는 그보다 많은 금리 인하를 전망했지만 작년 10월 이후 예상외의 고용 실적 호조와 끈적끈적한 인플레로 올해 1-2번의 금리 인하로 갑자기 FED의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게다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시중금리는 오히려 상승해 10년물 미국채는 4.7%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다. 우리의 10년물 국채가 2.8%이니 양국간 시중 금리가 2% 가까이 차이가 나면서 우리의 원달러는 지속적으로 평가 절하(환율상승)가 되었다. 환율 방어를 위해 궁여지책으로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자산의 선물환 거래를 통한 시장개입을 하면서 1470원을 경계로 움직이고 있지만 이 또한 단기 처방 밖에는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시장은 알고 있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케인즈가 얘기한 '유동성의 함정'이다 유동성 함정은 시장에 현금이 풍부하게 공급되어도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이 개념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도 경제 주체들이 소비와 투자를 늘리지 않아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을 설명한다. 우리는 계엄 이후 국민들이 소비를 멈추었다. 작년부터 가뜩이나 내수의 부진을 겪고 있고 모든 돈은 수익이 많이 나는 미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의 금리차로 환율 하락은 불가하고 금리 인하도 불가능하다. 한은의 통화정책은 RP가 마지막이다. 이제는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 여야가 추경을 얘기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아무 진전이 없다. 특히 소상공인과 다중채무자에 대한 핀셋 지원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