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삼성 “어게인 2014”… ‘사법 리스크’ 해소 9부 능선 넘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2.05 13:28

‘국정농단’에서 ‘합병 논란’까지 사법 리스크 전후 극명한 변화

2014년 이재용 부회장 체제 반도체 스마트폰 글로벌 1위 굳건

2016년 이후 조직 문화 위축… 컨트롤타워 재건 등 과제 산적

차에서 내리는 이재용 회장

▲차에서 내리는 이재용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약 9년에 걸친 길고 험난했던 '사법 리스크'의 터널을 '거의' 빠져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 항소심 무죄 판결은, 그간 이 회장의 발목을 잡아 온 법적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삼성그룹 전체의 경영 정상화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로써 삼성은 총수 부재라는 초유의 경영 공백을 극복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에 속도를 낼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됐다.


이제 삼성은 총수 부재 장기화로 인한 조직 문화 위축과 미래 투자 차질 등 후유증을 치료하고, 지배구조 개편과 컨트롤타워 재건 등 숙제도 해결해야 할 시기다.



재계는 지금이 삼성의 재도약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면서, 동시에 기업의 책임 경영과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시기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정농단에서 합병 논란까지…9년의 법정 공방

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는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연루에서 시작되어 2020년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회계부정 혐의 기소로 심화됐다.




먼저 지난 2017년 2월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되면서 경영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국정농단 특검 수사 등 정치적 격변 속에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2019년 대법원에서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면서 다시 법정에 서야 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은 그룹 총수의 장기간 부재라는 초유의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2020년 9월에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불공정 거래 및 시세 조종 혐의로 또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자신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불공정한 비율로 합병을 진행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드디어 지난 3일 서울고등법원은 이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합병 목적에 대해 “피고인 이재용의 승계 및 지배력 강화라는 목적이 이 사건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부수적으로 경영권 안정 및 지배구조 단순화를 통한 지배력 강화라는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합병 비율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산정된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그것이 불공정해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라고 판시했다.


이처럼 길고 복잡한 법정 다툼은, 이 회장 개인은 물론 삼성그룹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기간 동안 삼성은 총수의 부재와 사법 리스크라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히며, 혁신적인 사업 추진과 미래를 위한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6년 이전 삼성…'공격 경영'으로 글로벌 시장 선도

그렇다면 사법 리스크가 드리우기 전의 삼성은 어떠했을까?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시작되기 전인 2016년 이전, 삼성은 '공격 경영'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울 만큼 적극적인 M&A와 투자를 통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던 시기였다.


지난 2016년 80억 달러 규모의 하만 인수가 대표적 사례다. 이는 삼성의 전장 사업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녔다.


이 시기 삼성은 미래전략실이라는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그룹 전체의 시너지를 창출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둔 상태였다.


미래전략실은 삼성의 장기적인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고, 대규모 투자를 조정하며, 계열사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또 2014년 이후 이재용 부회장 체제로 전환되면서 삼성은 반도체, 스마트폰 등 주력 사업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혁신적인 기술력으로 시장을 선도했다. 특히, 반도체 시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했으며,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기능을 갖춘 제품들을 출시하며 경쟁 우위를 점했다.


이처럼 2016년 이전 삼성은 기술 혁신과 과감한 투자,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왔다. 당시 삼성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대표 기업이자,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으로 인식됐다.


삼성전자 로고 박스. 사진=박규빈 기자

▲삼성전자 로고 박스. 사진=박규빈 기자

리스크 이후 삼성…'수동적 경영'으로 성장 제동

반면,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된 2016년 이후의 삼성은, 경영 활동 위축과 미래 투자 지연이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는 그룹 차원의 통합적인 전략 수립과 조율 기능을 약화시켰으며, 이는 대규모 투자와 M&A를 추진하는 데 제약으로 작용했다.


또 이재용 회장은 2019년 삼성전자 이사회 멤버십에서 사임했으며, 이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부재로 이어져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이 기간 동안 삼성은 적극적인 투자를 주저하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수동적인 경영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AI, 바이오,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 시기를 놓쳐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2023년 반도체 사업에서만 14조 88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인텔에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를 내주고 스마트폰 출하량도 애플에 밀려 2위로 하락하는 등 위기를 맞았다.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M&A가 전무했던 상황은 삼성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대한 불안감을 더했다. 또한, 이 회장의 재판 과정이 장기화되면서, 조직 문화도 경직되고 의사 결정 속도가 느려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무죄 판결 이후 과제…투자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 '숙제'

이번 이 회장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 회장에게 드리워져 있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고 경영 정상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검찰이 상고를 할 가능성이 높아 아직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있지만 지금까지의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비교적 적다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재계에서는 삼성에 대해 대규모 투자와 M&A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2025년 2나노 반도체 생산, AI 기반 신사업 확대, 미국 테일러 공장 건설 등 대규모 투자 계획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하는 중이다. 또한, 2025년까지 20조원을 투자해 용인 기흥캠퍼스에 반도체 R&D 단지를 건설하고, AI 사업 확장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미전실과 같은 조직을 재건해 그룹 차원의 신속하고 통일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제 삼성은 전보다 더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의 리더십과 삼성 임직원들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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