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 팬오션 ‘곳간’ 삼다 주가 폭락에 ‘발목’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2.06 14:58

주가 하락에 재무 부담 가중

‘승자의 저주’ 되풀이되나

NS홈쇼핑 전철 밟을라 우려

“문어발보다 내실 다져야”

팬오션 CI

▲팬오션 CI

하림그룹이 팬오션을 '곳간'처럼 활용하다 주가 하락에 발목이 잡히는 모습이다. 팬오션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해 그룹의 덩치를 키워왔지만, 벌크선 시황 악화로 팬오션 주가가 하락하면서 재무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하림그룹은 지난 2015년 벌크선사 팬오션을 인수하며 해운업에 진출했다. 팬오션 인수는 하림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규모를 키우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활용법에 있다. 하림지주는 팬오션을 그룹의 자금 조달 창구 역할로 활용하는 모양새다. 하림그룹은 과거 NS홈쇼핑 등 자회사를 통해 덩치 불리기에 나섰지만, 내실을 다지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팬오션 주식 73% 담보로 5670억원 조달…주가하락에 부담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하림그룹은 팬오션 지분을 담보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왔다. 하림지주가 금융권 등에 담보로 제공한 팬오션 주식 수는 지난해 3분기 기준 2억1470만640주다. 이는 전체 보유 주식의 73.39%에 해당한다.


9건의 주식담보대출 계약과 1건의 교환사채(EB) 발행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렇게 담보를 제공하고 하림지주가 모은 자금 규모는 총 5670억원이다.




주식담보대출은 팬오션 주식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방식으로, 그룹 운영 자금 확보에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가 하락 시 담보 가치 하락이라는 위험 부담을 안게 된다. 교환사채 역시 팬오션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향후 주가 상승을 기대하고 발행하는 경우가 많지만, 주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투자자들의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주식 담보 대출 대부분은 현재보다 팬오션의 주가가 높을 때 발생한 것들이다.




팬오션의 주가는 지난해 최고 5000원 선을 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3000원대 초반에서 횡보 중이다.


한국증권금융 1950억원 최대…4~5%대 이자율 적용

하림지주가 팬오션 주식을 담보로 설정하고 금융권에서 끌어모은 자금에 적용된 이자율은 최저 4.68%에서 최고 5.41%다.


하림지주가 팬오션 주식을 담보로 가장 많은 자금을 빌린 곳은 한국증권금융으로, 6595만5000주를 담보로 1950억원을 조달했다. 이 대출의 이자율은 4.93%이며, 계약 기간은 2024년 10월 20일부터 2025년 10월 20일까지다.


이어 국민은행으로부터 7070만주를 담보로 총 850억원을 두차례에 걸쳐 빌렸다. 각각의 이자율은 4.70%대다.


케이비하림제일차(유)와 우리에이치알제이차(주) 외 1개사는 각각 1400만주, 1826만3681주를 담보로 300억원, 800억원을 빌려줬다.


이 외에도 산업은행은 800만주를 담보로 870억원을, 농협은행은 2200만주를 담보로 400억원을, 우리은행은 1273만8854주를 담보로 500억원을 하림지주에 각각 빌려줬다. 이들 대출의 이자율은 4% 후반에서 5% 초반대로 형성돼 있다.


하림 CI

▲하림 CI

뿐만 아니라 하림지주는 1120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를 발행, 추가적인 자금 확보에 나섰다. 교환 대상 주식 수는 1603만8951주, 교환 가액은 주당 6983원으로 설정됐다. 교환 청구 기간은 2022년 7월 22일부터 2027년 6월 8일까지다.


해당 교환사채는 팬오션의 자금 조달에 큰 장벽 중 하나다. 계약에 따라 교환 가액보다 낮은 수준에서 유상증자를 하거나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려면 교환 가액을 그 수준으로 낮춰줘야 한다.


다른 주식담보 대출의 경우 팬오션 주가가 계속 하락할 경우 담보 가치가 하락해 금융기관으로부터 '마진콜'(추가 담보 요구)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림지주가 팬오션 주식을 담보로 제공한 비율이 높아, 지분을 추가 제공할 여력이 부족하다보니 현금이 필요할 수 있다.


벌크선 시황 악화에 NS쇼핑 전철 밟을까 우려

팬오션 입장에서는 모회사가 자사 지분을 담보로 대규모 유동성을 일으켜둔 것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벌크선 시황이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에서 팬오션의 주가 회복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파나마 운하 통행량 개선, 세계 철강 시장 부진, LNG 생산량 증가 등 수요 측면에서 부정적인 요인이 많다.


한편 그동안 하림그룹이 자회사를 활용해 덩치를 키워왔지만, 내실을 다지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NS쇼핑이다.


NS쇼핑은 홈쇼핑 산업의 특성상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하림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해왔다. 하림지주 대신 대규모 투자 주체로 나서면서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데 기여했다.


그 과정에서 NS쇼핑은 자회사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재무 부담이 누적됐다. 그룹 차원의 투자에 집중하느라 홈쇼핑 본업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지면서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국 NS쇼핑은 지난 2022년 상장폐지되기도 했다.


팬오션 내부의 우려도 NS홈쇼핑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림그룹이 팬오션을 그룹의 자금줄로 활용하면서 팬오션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재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NS홈쇼핑 사례에서 보듯, 자회사를 활용한 무리한 확장은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창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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