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국 230조원 차관 제공
GDP 중 국방비 3.5%로↑
유럽 현지의 방산 기업들
ESG 룰 따라 공급망 붕괴
KAI·현대로템, 바르샤바 거점
“한화에어로 성장세 이어져”

▲독일 연방군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사진=메타 디펜스·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미국의 개입 없이 독자적인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사상 최대 규모인 8000억유로(약 1229조원)의 방위비 증액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한국 방위산업계가 유럽 시장에서 입지를 또 한 번 넓힐 기회가 찾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전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럽 재무장 계획'(REARM Europe Plan)을 27개 회원국 정상에게 제안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 회담이 파행을 빚은 직후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모든 군사 지원을 중단한 직후 나온 것이다. 미국이 유럽에 제공했던 '안보 우산'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행보로 보인다.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우선 EU 예산으로 1500억 유로(약 230조원)의 차관을 회원국들에게 제공하겠다는 구상으로, △방공 체계 △미사일·포탄 △드론 등 각종 군사 장비를 회원국 간 공동 조달에 활용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재정 적자·국가 부채를 각각 국내 총생산(GDP)의 3% 이하, 60% 이하로 유지하도록하는 EU 재정 준칙 적용을 유예하겠다며 '국가별 예외 조항'도 언급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회원국들이 국내 총생산(GDP) 중 국방비를 평균 1.5% 가량 증액하면 EU 차원의 제재 부담 없이 4년 간 6500억 유로(약 998조원) 상당의 재정적 여유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EU 27개 회원국 중 23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한 상태이고, 국방 예산은 GDP 중 2.0% 수준인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의 발언대로라면 3.5% 수준으로 껑충 뛰게 된다. 집행위의 계획은 회원국 간 합의를 요하는 만큼 오는 6일 개최되는 특별 정상회의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에어버스의 미래 전투 항공 시스템(FCAS) 개념도. 사진=에어버스 제공
이처럼 EU가 방위비 증액에 적극 나서자 영국 BAE 시스템즈·독일 라인 메탈·프랑스 에어버스 등 유럽 주요 방산 기업들의 주가는 치솟고 있다. 그러나 해당 업체들은 유럽 각국의 발주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 간 정부-관련 업체들 간 신뢰 관계가 무너졌고, 환경·사회·지배 구조(ESG) 기조에 따라 방산업계는 위험하고 사회적 이익이 없는 산업으로 인식돼 금융권이 대출과 투자를 기피해와서다.
그간 독일 시중 은행들은 티센크루프 그룹 매출 중 10% 이상이 방산 부문에서 나오면 대출을 규제하겠다고 위협했고, 8310억 스웨덴 크로나(약 116조원)를 운용하는 스웨덴 최대 자산 관리 기업인 SEB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는 그간 방위 산업체에 대한 투자를 금지해왔다.
그랬던 만큼이나 유럽은 방산 제품의 현대화에 게을렀고, 독일-프랑스 간 주도권 싸움 탓에 차세대 전투기·전차 개발 사업은 진척을 보이지 못해 즉시 전력감이 될 수 있는 한국산 무기를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평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A1 자주곡사포·K-10 탄약 운반 차량 모형. 사진=박규빈 기자
이에 따라 한국과 같은 신흥 방산 강국에 또 다시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앞서 2020년 연간 30억달러 수준이던 K-방산 수출액은 2021년 73억달러, 2022년 173억달러로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에는 200억달러를 밑돈 것으로 추산되지만 올해 국내 방산 기업들의 성장세는 이번 유럽의 대규모 방위비 증액을 계기로 재차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방산업계는 이번 기회를 활용해 유럽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전망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는 폴란드를 유럽 시장 내 KF-21 보라매·FA-50 마케팅 거점으로 삼아 2023년 10월 현지에 중부 유럽 사무소를 차렸고, 슬로바키아·불가리아 등 나토 회원국을 대상으로 글로벌 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2 흑표 전차를 앞세운 현대로템은 2023년 상반기 조직한 '폴란드 법인'의 명칭을 '유럽 방산 법인'으로 바꿔 관할 지역과 역할을 확대했다.
배성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상 방산 수주 잔고가 32조4000억원이고 수출 비중은 68%였다"며 “올해 러-우 휴전 여부와 관계 없이 주요국 국방비 확대 추세 지속에 따라 방산 매출은 20%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