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불안정한 세상과 다시 올 녹색성장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5.01 10:58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학과 명예교수

세상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우리가 오래 당연하게 생각해온 안전하고 좋은 세상이 온다는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 현재 국제질서의 골격은 2차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 7월 체결된 '브레튼우즈' 협약(Bretton Woods Agreement)이다. 이 협약은 세계 대전의 시련을 딛고 공존-공영의 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그 주요 내용은 1) 금(金) 본위 기조 아래 미국 '달러'화의 기축(基軸) 통화 지위 합의와 고정 환율제의 채택, 2) 환율 안정과 국제 무역의 활성화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설립으로 요약된다. 이 협약은 전후 세계 경제의 안정과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환율의 변동성이 최소화되어 국제 무역이 활성화되었고, IMF와 IBRD의 지원 활동은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에 미국의 대외 부채가 증가하고, 석유파동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1971년 미국이 금본위제에 기본을 둔 '달러'화 기축 통화 지위를 포기하여, 이 협약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여기서 석유파동이라는 에너지 위기가 '브레튼우즈' 체제 종식의 큰 요인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실물자산인 석유-에너지가 가상자산인 '달러'화 기축체제 종식을 유도한 셈이다. 이 결과로 글로벌 가치 교환체제가 붕괴와 인류문명 지속 가능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지금 세계가 처한 가장 큰 위험은 지정학적 위험과 불합리한 정치권 행태라는 '골드만 삭스' 등 여러 연구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지정학적 위험이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독불 장국 '트럼프' 정부 재집권 등 정치 위험은 두 번째이다. 관세 부과를 통한 국제질서를 훼손하는 '트럼프' 정책은 석유파동으로 훼손된 '달러'화 가치를 지금 보전받으려는 염치없는 행태일 수 있다. 그러나 시장경제 논리의 경시에 따라 '트럼프'취임 100일 만에 미국민 지지도는 40% 수준으로 하락하는 등 변화가 불가피하다. 아마 시장 논리에 따른 정상적 보정이 이루어질 것이다.



세계 위험은 지정학적 위험과 불합리한 정치권행태


그러나 우리는 정치외교 전문지인 'Foreign Affairs'가 지정학 위험의 주요 원인으로 '인프라 네트워크' 취약성을 꼽은 점에는 여전히 유의해야 한다. 국가 간 연계 증가와 공통 기술 의존성 증대로 인해 다양한 글로벌 상호연계가 급증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상호연계 사례가 에너지산업과 통신일 것이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에너지, 통신 부문을 필두로 필수 민생서비스 제공을 완전보장할 수 없다. 대신 민간기업과 일부 공기업들이 정부와 연계하여 민간 필수재 공급의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기업과 공기업 간의 역할 일부 혼돈과 이해 충돌은 누적되어 에너지-기후문제의 주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에너지 부문의 주된 해결과제는 전통적 에너지 생산-유통-소비 체계가 아니다. 1980년대부터는 에너지 절약/이용 합리화가 주요 관심이었으나 지금은 기후변화대응이 압도적이다. 더욱이 기후변화 감축 효과는 대체로 비관적이다. 2100년까지 지구 대기 온도상승을 섭씨 1.5 도 이하 유지라는 UN'파리'협약 준수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세계 최고 과학자들은 영국 '가디언'지 설문 조사에서 2100년까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최소 2.5도 이상 상승할 것으로 보았다. 현존 지구 문명 소멸 수준이다. 이들 중 거의 절반은 최소 3C 이상 상승을 예상했다. 아마 갈수록 비관적 견해가 커질 것이다. 이전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기후 유발 '디스토피아(Dystopia; 극단적 암울한 미래)가 우려된다. 따라서 시장경제의 한계, 글로벌 정치와 시장통합의 파행(Fragmentation), AI 등 신기술의 역할 강화 등으로 에너지 부문의 역할과 가치는 급변할 수 있다. 이에 에너지 수급 취약성이 매우 큰 우리나라는 신중한 에너지 연구방법론이 요구된다.


기후변화대응, 에너지분야의 주된 해결 과제


사실 기후변화 '이슈'는 갈수록 지정학 주요 과제에서 밀려나고 있다. 재무장 및 AI 우위를 향한 경쟁과 같은 지정학 과제들이 관심의 초점이다. 해수면 상승, 장기 무더위 등은 단순한 위험이 아니라 인류문명 지속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사실이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사실 기후 변화위협은 과학적 기준에서는 분명히 커지고 있지만, 기업은 물론 기후 혁신운동가조차도 효율적인 대처방안 모색 없이 단지 어색한 침묵을 지킬 수 있다. 민간 경제주체들이 재정적 또는 정치적 이유로 환경적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행태를 '그린 허싱'(greenhushing)이라 한다. '그린 허싱'의 증가는 기후대책, 안보, 시장경제 문제해결과정에서 우선순위 설정 과정에서의 갈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특히 왜곡된 정보와 부정적 주장의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바로 '정책실패' 이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항상 자신들이 새로운 정책 시도를 통해서 왜곡된 시장과 시민들의 관념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책실패를 고려해야 한다. 바로 정치인들의 자질 문제이다. 작년 11월 발간된 '이코노미스트( Economist)'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교육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보도하였다. 한국 선출직 정치인의 1/3이 박사학위(PhD) 소지자이란다. 그러면 우리 국정운영의 효율성과 공정성이 세계 최상위 수준인가? '웃으면서 답은 하지 않는다.'라는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다. 지적 수준이 높은(?) 우리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일반 국민복지와 국리민복 고양 의무에 충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근 우리 대선 과정에서 주요 정당의 유력 후보들은 앞다투어 에너지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어느 유력 후보는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활용 증대에서 필수적인 '에너지 고속도로' 추진과 RE100 (신-재생에너지 자급) 산업단지 100개 이상 조성 등을 약속하였다. 다른 후보들도 에너지 부문의 숙원인 기후경제부 신설, 기후산업 400조 원 투자, SMR(소형 '모듈러' 원전) 상용화 추진 등을 공약하였다. 왜 모두들 에너지대책에 관심이 큰가? 여러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이 미흡이 그 큰 이유 중 하나로 필자는 생각한다.


예너지 정책의 성공 요체는 정확한 미래예측


어느 후보가 검토 결과를 제시하니 다른 후보들이 검증 없이 급히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에너지 부문의 특성은 장기 규모 장기 투자와 긴 선행기간이 요구되어 대규모 단기적 부가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멀다. 급히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릇 국가 에너지대책은 '인과관계의 규명'과 반복적 실험과 검증을 통한 '일반화' 그리고 정립된 이론을 통한 '미래예측 능력의 통제' 과학적 연구방법론 이행과정을 엄격히 거쳐야 한다. 이래야만 미래예측이 가능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70년대 석유파동보다 더욱 '지속 불가능한' 에너지여건에서 우리 정치권의 '무책임성'이 갈수록 두렵다. 더욱이 우리는 지난 정부의 과시적 '녹색개발(green developments)'의 후과(後果)를 청산해야 한다. 온난화 방지와 성장과 복지를 동시 증진할 수 있다는 이 논리는 여러 논리적 한계로 지금은 그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적정 탄소 가격의 부재와 민간기업의 시장진입 한계가 가장 큰 제약이다. 이에 선진 학계에서는 큰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문재인 정부 녹색성장 논리가 차기 정부 에너지대책 기반 논리가 될 소지가 있다. 지역균형 발전, 분배 중시 등의 정치 이념을 '녹색성장'으로 포장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더욱이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에 한계가 있는 에너지 부문의 특성을 활용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10년쯤 뒷걸음칠 수 있는 우리 에너지 부문을 생각하면 되돌아가기도 하는 세월 흐름의 무게를 되새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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