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사태’만 생기면 ‘전면 규제’…‘망치’보다 ‘핀셋’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5.0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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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주 자본시장부장(부국장)

유통 채널의 정산 주기 단축을 놓고 관가와 정가가 너도나도 규제에 나서고 있다.




규제 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최근 전통 소매업의 대금 정산 기한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당정 협의를 거쳐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추진했다. 올해엔 업무 추진 계획에 정산 기한 단축을 골자로 정부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상 오프라인과 직매입 거래의 정산 기한은 40~60일 이내다. 2021년 이커머스 시장이 열린 뒤 유통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도입한 규제다. 기존 오프라인 업체와 마찬가지로 쿠팡·컬리 등 이커머스 기업들도 이 규정을 따르고 있다.



새 정부 입법안은 온라인 중개 거래 플랫폼의 정산 주기에 대해 대상과 정산 기한 기준 제시가 골자다. 강민국 의원이 낸 △수익 100억 원 이상 또는 중개 거래 금액 1,000억 원 이상 플랫폼 △20일 이내 정산 등이 핵심이다.


지난해 국감 현장에서 정무위원회 일부 의원들은 개정안의 규제 내용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다. 천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다수 오픈마켓 플랫폼의 정산 기한은 1~3일이며, 개정안 기준인 20일 정산은 이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정계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정산 주기 단축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 직후부터다.


지난해 9월 3일 윤영석 의원(국민의힘)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 사업자도 대규모 유통업자로 규정, 소비자가 구매를 확정한 날로부터 5일 이내에 온라인 판매 사업자에게 판매대급을 지급하게 하자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 다음 날에 임미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판매 대금 지급 기한을 월 판매 마감일로부터 10일 이내, 직매입하는 경우에는 7일 이내, 신선 식품의 경우는 5일 이내로 하고, 상품 판매 대금의 50%를 별도 관리하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10월 28일에 강민국 의원(국민의힘)은 정부 입법안으로 중개 거래 수익이 100억 원 이상이거나 중개 거래 금액이 1,000억 원 이상인 사업자를 대규모유통업자로 규정, 소비자의 청약철회기간이 만료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판매 대금을 지급도록 하고, 판매 대금을 받아 관리하는 경우 판매 대금의 50% 이상을 은행 등에 예치토록 하는 법안을 냈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에 계류 중이다. 위메프 사태로 온라인 중개 사업자로 규제를 확대하자는 논의가 한창 벌어지다 12·3 계엄 이후 국회의 입법 기능이 사실상 중단됐다. 그 사이 홈플러스 사태가 터졌다. 이번에는 오프라인 유통업도 문제가 크니 정산 기한 단축으로 규제를 강화하자는 주장이 더 강해졌다.


올해 3월 26일 오세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특약매입거래·매장임대차·위수탁매입거래 시 판매대금 지급 기한을 월 판매마감일로부터 40일→20일 이내로, 직매입거래의 상품대금 지급 기한을 해당 상품수령일로부터 60일→40일 이내로 단축하는 한편, 자산총액 또는 매출액 규모를 기준으로 영세한 납품업자 등에게는 더욱 신속하게 대금을 지급하도록 차등을 두자는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4월 2일 김남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상품 판매 대금 정산 기간은 월 판매마감일로 부터 10일로 단축하고, 직매입거래의 경우엔 상품수령일로부터 30일 이내로 단축하자는 법안을 냈다.


발의안은 제각각이나 의원발 규제 핵심은 크게 3가지다. △정산 기한 규제는 '대규모유통업자'에 한정되는데 이 대상에 온라인 중개거래 플랫폼을 대거 포함하자 △대규모유통업자의 대금 정산 기한을 크게 앞당겨 판매사업자의 유동성을 보장하자 △판매대금 50% 이상을 은행에 예치, 유통사의 대금 유용을 어렵게 하자는 것이다.


정관계 주장을 종합해 해석하자면, '유통업에서 대규모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판매업자가 대금을 못 받아 줄도산으로 이어지더라. 그러니 대부분의 유통업체로 규제 대상을 늘리고, 판매업자에게 줄 돈을 유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더 빨리 대금을 주도록 강제하자'는 말이다.


놀라울 만큼 단순하다. 유통업을 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정관계는 늘 '전면 규제'만 내걸고 있다. 소상공인의 편의를 위해 유통 생태계를 파괴하더라도 규제를 강화하자는 발상이다.


규제와 상관없이도, 네이버나 쿠팡 등 메이저 사업자는 이미 선정산을 통해 유통 플랫폼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통해 소상공인은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있다. 정작 소상공인은 60일 이상의 현금 완충에 이미 대비하고 있다. 업계는 이미 현 정산 시스템에 적응해 선순환하는 유통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정부가 플랫폼을 규제하면 이는 거래 규제로 이어진다. 거래 규제는 온라인 소상공인 피해로 확산한다. 그래서 플랫폼 규제는 전면 규제가 아니라 업체를 가려서 해야 한다.


이에 대해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재무위험이 높은 플랫폼을 가려내고 이들 기업에 대해서는 일정 기준 이상의 판매대금을 신탁계정 또는 공제조합을 통해 안정적으로 분리 보관토록 하고, 재무적으로 건전한 플랫폼은 스마트에스크로 등의 자율적 보호장치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차등적 규율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괄 규제를 지양하고 플랫폼별 특성과 위험 수준에 부합하는 균형 잡힌 거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위험 플랫폼을 선별해 집중 감독하고, 재무건전성이 확보된 기업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감독만을 유지해 효율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달성하는 정밀 감독 체계를 마련하자는 정책 제안이다.


네이버의 빠른정산이나 안심보험과 같이 업계의 자율적인 시장 자체 조정능력을 강화하고 거래 신뢰를 복원하는 것이 유통 생태계를 키워나가는 정상적인 방법이다.


규제 당국은 늘 그랬다. '사태'만 생기면 당황해 거대한 해머를 들고나와 앞뒤 가리지 않고 망치질만 해댔다. 이제는 가장 핵심적인 근본 원인을 찾아내 핀셋으로 골라잡아 내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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