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문기업 플레시먼 힐러드
‘선거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본 7가지 시사점’ 분석
이변은 없었다. 지난 3일 치러진 6∙3 대선에서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49.42%의 득표율로 대한민국의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쟁자인 국민의 힘 김문수 후보(41.15%)보다 8.27%포인트나 앞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오전 취임식을 취임선서로 대신한 뒤 전임 윤석열 대통령이 사용했던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곧바로 집무를 시작했다. 집무실은 청와대 보수공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다시 옮길 예정이다.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전문기업 플레시먼 힐러드(대표 박영숙)는 이번 대선을 “이재명 후보의 승리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승리"라고 결론지었다. 정치·사회 여론을 선도하고 있는 에너지경제신문은 플레시먼 힐러드의 협조를 받아 제 21대 대통령선거 결론의 배경과 선거에서 새롭게 나타난 특징 및 의미를 '선거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본 7가지 시사점'으로 나눠 분석하는 특집기획을 마련했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의 이번 대선 정책 공약 중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칠 주요 경제 관련 내용을 요약해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대응 방안을 수립하는 데 인사이트(통찰력)를 제공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출처=한국갤럽
◇ 대선결과 시사점 1 : 불확실성을 없앴던 선거
'내란종식'으로 진보층 결집, '중도보수'로 부동층 흡수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다. 그래서 예측이 힘들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다. 특히, 선거와 같이 당선을 다투는 행위는 변수가 많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선 불확실성이 사실상 없었다. 이는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라 불확실성을 없앤 이재명의 치밀한 계획과 전략의 결과였다. 이재명은 12∙3 비상계엄사태 이후 선거 때까지 6개월 동안의 모든 인물 지지도 조사에서 2위 그룹과 큰 차이의 선두를 지켜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했다가 불명예 탄핵되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3년 만에 물러나게 되면서 치르게 된 선거라 처음부터 '정권교체론'이 워낙 컸다. 그 이후는 민주당의 '굳히기'와 국민의 힘의 '뒤집기' 대결로 볼 수 있는데 과정과 결과에서 나타났듯 민주당이 완승을 거두었다.
이재명은 우선 '내란 종식'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며 '진보 지지층'을 집결시켰다. 동시에 '민주당은 중도 보수'라고 선언해 '중도 부동층'의 표심까지 얻으면서 선거초반부터 선두에 올라섰다.
뒤늦게 대선 후보를 정한 국민의 힘이 반격에 나섰지만 어떤 돌발변수도 허용하지 않는 '조심, 또 조심' 전략으로 시종 우위를 지켜냈다. 논란이나 쟁점으로 떠오를만한 말과 행동을 일체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경쟁후보들에 비난이나 공격도 삼갔다.
경제와 미래를 강조하며 긍정적이고 책임있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굳혀 나갔다. 작은 불씨도 신속한 사과 또는 진정성있는 설명, 해명을 통해 큰 불로 번지지 않도록 했다.
각종 유세와 TV토론 내내 단정짓지 않는 온건한 말투와 '검토, 고려, 고민'같은 결론을 섣불리 내지 않는 유보적인 어법 및 포용적이고 겸손한 행동으로 싸움을 피했다. 대신 이미 정치생명이 끝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타깃으로 '내란세력 심판'을 줄기차게 주장하며 선명성을 지켰다.
◇ 대선결과 시사점 2 : 창보다 '방패'
직설 문장 피하고 완곡 어조로 '돌발변수 차단' 성공
공식선거기간 동안 주요 대선후보 4명을 대상으로 한 3차례의 TV토론이 있었다. 워낙 급하게 치러진 선거여서 후보들에게 궁금한 게 많았던 유권자들로서는 후보들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후보들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렇게 중요한 토론회에서 4명의 후보가 발언한 총 단어 수는 2만 2428개(사회자 발언 제외)였다. 이를 플레시먼힐러드 TGI(True Global Intelligence) 데이터분석팀이 챗GPT 4.0을 사용해 분석했다.
접속사의 경우, 이재명은 '그리고, 그래서, 그러니까, 때문에, 즉, 이어서'와 같은 설명형 또는 설득형 접속사를 71회 사용했다. 김문수(49회), 이준석(35회), 권영국(38회)에 비해 훨씬 많았다. 반면에 '그런데,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와 같은 대조형 또는 전환형 접속사의 빈도는 네 후보 중 가장 적었다.
챗GPT에게 완곡한 어조 (Soft Tone)와 직설적인 어조 (Direct Tone)를 구분해 달라고 하였다. 완곡한 어조란 '의견이나 주장, 요구사항을 간접적이고 신중하게 표현하여 상대방과 가급적 대립이나 충돌을 피하려는 어조'다. 표현에 여지를 남기며 단정하지 않는 방식인데 “~할 것 같습니다", “~것으로 보입니다",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이 대표적이다.
직설적인 어조는 '상대방과 부딪히더라도 주장이나 명제를 단호하고 명확하게 전달하는 어조로, 의지나 결단을 강조하는 방식'에 가깝다.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중요합니다" 등 단정적인 표현과 강한 어휘가 대표적이다.
완곡한 어조의 문장은 이재명이 가장 많이 사용(15회)했고, 권영국(9회), 이준석(6회)의 순이었으며 김문수는 단 한 문장에 그쳤다.
반면에 직설적인 문장은 권영국(115회), 김문수(90회) 순으로 많았고, 이재명은 64회(이준석 60회)에 그쳤다. 각 후보들이 제시한 키워드에서도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이재명은 경제(24회), 대한민국(24회), 내란(23회)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반면 김문수는 재판(47회), 탄핵(25회), 규제(19회)의 순으로 많이 언급했다. 이준석은 대한민국(34회), 토론(17회), 경제(16회)의 순이었다.
총 발언한 문장 수는 이재명이 791개로 가장 많았고, 다른 세 후보는 550~640개에 그쳤는데 이는 이재명에 대한 질문과 공격이 몰렸기 때문이다. 지킬 게 많았던 이재명은 토론회 내내 공격보다 수비에 충실하면서 새로운 돌발 변수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이었다. '날카로운 창'보다 '튼튼한 방패'에 집중한 셈이고,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성공했다.
이러한 정치·외교적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복잡한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 속에서 비즈니스 의사결정을 쉽게 내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럼에도 기업의 입장 표명을 요구받는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들이 겪는 '딜레마' 상황에서도 전략적으로 벤치마킹할 만하다.
◇ 대선결과 시사점 3 : 유권자가 인식하는 후보들의 이미지
서민친화·포용정책·미래지향 이미지로 정책 리더십 전달
각 당마다 많은 공약을 내놓았으나 막상 떠오르는 공약이 없다.
'AI인재들의 일자리가 넘쳐나는 경제강국, 세계인이 울고 웃는 콘텐츠로 미래산업을 창출하는 문화강국'(이재명), '경제성장의 길, 국민 삶을 지키는 길, 정의가 살아있는 길'(김문수)은 유권자에게 배달된 팸플릿에 적힌 내용이다. 알맹이가 없이 추상적인데다 실행에 필요한 재원마련 계획이 빠져 있어서 신뢰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국민의 힘·민주당 모두 사전투표를 사흘 또는 하루를 남기고 공약집을 내놓았다.
선거가 급하게 치러지다 보니 공약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기도 하지만, '나의 약속'보다 '상대방 비판'에 힘을 쏟는 모습이 뚜렷했다. 차분한 공약 대결이 사라진 자리를 막말과 비방이 채웠다.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상대방을 고발한 건수만 26건이다. 19대 18건, 20대 10건보다 훨씬 많았다.
이번 선거는 아마 우리나라 선거 역사상 가장 네거티브 공격이 난무했던 선거로 기록될 것 같다. 단기간에 표를 얻으려면 상대방 흠집내기가 가장 효과적이라는 정치공학적 계산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정책 개발과 공약 검증의 소중한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 지지 후보에 따른 진영 갈라치기로 인해 국가적 과제인 국민통합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갤럽이 대선 12일 전(2025년 5월 넷째주)에 △경제 △사회복지 △국가안보 △외교 △과학기술육성 △기후변화·환경 △갈등해소·국민화합 등 7개 핵심 분야에서 각 후보의 이미지를 평가한 '제21대 대선 주요 후보 이미지' 조사 결과는 선거 결과 예측에 분명한 신호를 보여주었다.
이 데이터를 갖고 플레시먼힐러드 TGI 데이터분석팀은 대응분석(Correspondence Analysis, CA분석)을 통해 유권자의 마음 속에 있는 후보들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살펴보았다. CA분석은 각 후보가 어떤 정책 분야에서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지, 그리고 유권자들이 각 정책 영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CA분석에서 이재명은 '사회복지', '경제', '갈등해소·국민화합', '기후변화·환경' 등 서민 친화적이고 포용적인 정책 군집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환경' 분야가 이재명 후보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것은, 그의 '기후에너지부 신설' 공약이 미래지향적 정책 리더십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한 현재의 경제적 이익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정책 철학이 유권자들에게 어필했음을 시사한다.
김문수는 '국가안보'와 '외교' 분야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보인다. 이는 그의 '전술핵 재배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 강경한 안보 정책이 그의 정치적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다른 정책 분야들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안보·외교 이외 분야에서의 차별화된 정책 어필이 부족했음을 시사한다.
이준석은 '과학기술육성' 분야와 가장 강한 연관성을 보인다. 이는 그의 '규제기준국가제', '규제샌드박스 특례기간 확대' 등 혁신과 규제 완화 중심의 정책이 젊은 정치인다운 미래지향적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다른 정책 분야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위치에 있어 정책의 폭과 다양성 면에서 한계가 있었음을 드러냈다. 이는 그가 '작은 정부'와 '부처 통폐합'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제한된 정책 영역에서만 차별화를 이뤘다는 점을 시사한다.

제21대 대선 민주당 7대 경제 공약과 기업 선재대응 방안
▲=제21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정책공약집
◇ 대선결과 시사점 4 : '후보들의 언어'에서 나타난 프레임 전쟁
김문수보다 윤석열 2배 더 언급…'정권교체' 프레임 부각
한국일보는 5월 12~31일 20일 동안 대선후보들의 현장 유세 연설문을 전수 조사했다. 김문수(66회), 이재명(55회), 이준석(27회), 권영국(8회)등 총 156회분으로 13만 1867개 단어다.
이에 따르면, 이재명은 내란을 384회 언급(연설마다 평균 7차례)하면서 계엄(166회)과 쿠데타(137회)도 자주 언급했다. 반면, 김문수는 방탄(521회), 탄핵(326회), 독재(223회)를 주로 거론하면서 공격의 화살을 이재명에게 돌렸다. 법원(285회), 재판(267회)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를 부각시켰다.
이재명은 윤석열(88회)을 경쟁후보인 김문수(44회)보다 2배나 더 언급했다. 이준석·권영국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상대후보에 대한 직접 공격을 피한 채 전임 대통령의 책임론을 부각시킨 것이다.
김문수의 경우, 윤 전 대통령 언급을 최소화(9회)한 채 이재명 공격(80회)에 집중했다. 이준석도 본인의 이름(169회)보다 이재명(241회)을 더 많이 언급했다.
동아일보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5월 12~29일 각 당의 공식 연설문 유세 키워드를 분석했는데 이재명은 내란을 332회, 김문수는 방탄을 419회 언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등의 표현으로 비상계엄에 맞서는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내란세력 심판을 화두로 삼았다.
이와 달리, 김문수는 반(反) 이재명 메시지에 집중했고, 이준석도 김문수(13회)보다 10배가 넘는 143차례 이재명을 거론하면서 집중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후보들마다 프레임을 다르게 잡았던 셈인데, 자신이 강한 곳보다 상대가 약한 곳에 화력을 집중했다는 점에서 네거티브 선거전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었다.
한편, 한겨레21은 대선기간 중 각 후보가 SNS에 올린 글 600여개를 분석했다. 이재명이 가장 많이 언급한 키워드는 산업(229회), 지원(178회), 경제(127회) 등이었다. 노동∙평등보다 경제∙성장에 방점을 찍은 것이 흥미롭다.
김문수는 자신의 이름을 가장 많이 언급(188회)했는데 후발주자로서의 존재감 부각이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 대선결과 시사점 5 : 신 여대야소(與大野小)
2028년 봄 총선까지 막강권력…국정 신속추진 기대, 견제 실종 우려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은 전체 투표자의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 이 같은 득표율은 지난 18대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얻은 51.6%를 제외하고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약 40년 동안 치러진 대선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이에따라,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정책들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국민적 지지 기반을 구축하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대패한 국민의 힘은 여당의 자리를 내주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영향력도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동서(東西)로 극명하게 갈라진 득표율은 지역갈등이 얼마나 고착화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방송 3사(KBS · MBC · SBS)의 출구 조사에 따르면 4050세대는 이재명에게, 70대 이상은 국민의힘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2030세대는 남성은 보수, 여성은 진보로 나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4월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총 300석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175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번 대선 승리로 완벽한 '여대야소(與大野小)' 권력을 갖게 되었다.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장악하게 된 이런 구도는 적어도 다음 총선이 예정된 오는 2028년 봄까지는 계속된다.
더욱이 이제 여당이 된 민주당은 계보나 계파가 사실상 사라졌을 만큼 '친명(親明) 일색'이다. 지난 총선 때 대거 공천을 받았던 친이재명계가 대부분 당선되면서 이뤄진 구도이다. 수년 전 문재인 정부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내 주류였던 친문계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 단적인 예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치러진 당내 경선이었다. 당시 이재명은 김동연(경기도지사), 김경수(전 경남도지사)와 맞붙은 3파전에서 무려 89.77%의 득표율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었다. 그 전까지 가장 높았던 경선 득표율은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받았던 78.04%였다.
이재명 정부는 이제 지난 윤석열 정부 때 국민의 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다수결로 국회에서 통과시켰다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번번히 가로막혔었던 수많은 법안들을 손쉽게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 정책이 신속하고 활기차게 시행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동시에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제동 장치가 사라진 셈이어서 많은 국민과 기업들의 걱정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기도 하다.
◇ 대선결과 시사점 6 : 반(半)통령이 아닌 대(大)통령
지역·이념 등 국론 분열 끝내는 '진정한 통합정치' 갈망
이재명은 과거 어느 민주당 출신 후보들도 하지 않았던 행보를 이번 대선에서 보였다. 그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니라) 중도 보수'라면서 성장이 있어야 분배도 가능하고, 재생에너지가 중요하지만 원전도 필요하다고 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등 첨단 산업 육성이 절실하며, 기업을 얽매는 규제는 대폭 풀어야 한다는 경제관도 피력했다.
유세기간 동안 넥타이와 신발도 빨강과 파랑을 섞은 색깔로 매거나 신었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실력파'라는 말로 유권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우(右)클릭'으로 보이기도 하는 행보가 중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한 전략인지, 본인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신념인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하지만 후자일 가능성이 높고, 또 그렇기를 많은 국민들이 바라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 가운데 가장 큰 문제가 아마도 국론 분열일 것이다. 나이·성별·지역·계층·이념으로 산산이 갈라진 채 갈등의 골이 점점 깊게 패여 왔다. 이를 해소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앞장서서 대립과 분열을 조장한 측면이 크다. 그 결과가 이번에 목격한 '네거티브 선거'다.
3차례의 TV토론이 끝난 다음날 이재명은 스스로 이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의 정책과 비전, 희망을 전해야 할 대선이 비방과 험담, 입에 올릴 수도 없는 혐오의 언어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는 “끝없는 편가르기와 갈등으로 대립하는 낡고 낡은 구태 정치에 미래는 없다"며 “이제 끝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半)쪽만 바라보고, 반(反)대쪽을 억누르기만 하는 반통령이 아니라, 크게 통합하는 대(大)통령이 절실하다"고 부연했다.
이재명이 이런 초심을 잃지 않기를 온 국민이 바랄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결국 실천하지 못했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기를 희망한다.
◇ 대선결과 시사점 7 : 이제는 유권자의 시간
국내외 난제 산적 새 정부에 지지와 비판 '민주적 민의(民意)' 필요
“선거가 끝났다. 따라서 유권자의 시간도 끝났다?" 아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유권자인 국민들의 시간은 이제부터다. 이유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 대한민국 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
정치∙경제∙사회 전 분야에서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 내수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미국발 관세폭탄으로 수출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평화로웠던 세계화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며 가혹한 국제통상전쟁 시대를 맞게 되었다. 북핵과 주한미군 이슈를 포함한 안보 문제도 심각하다.
사회적으로는 더 이상의 분열과 대립을 막아야 한다. 친구·친척끼리 여야로 나뉘어 얼굴을 붉히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개헌을 통해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 시스템도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아무리 강하고 힘센 대통령이나 정부라 하더라도 그들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국민이 나서야 한다.
둘째, 새 정부는 이전 정부가 탄핵당하면서 두 달 만에 선거를 마치고 구성되는 정부이다. 선거 다음날 곧바로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은 어찌보면 백지상태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나중에 부담으로 돌아올 만한 공약을 내놓지 않았다. 특히, 여러가지 논쟁적인 쟁점에도 “양 측면을 다 고려해야 한다"는 식의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매우 실용적인 스타일이기 때문에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서 유연하게 정책 대응을 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국민들의 생산적인 의견, 즉 민의 표출이 중요하다. 어찌보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꿈꿨던 참여정부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적기가 될 수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표방하는 '국민주권정부'가 바람직한 정책을 수립해 나가도록 투표행위 못지않게 적극적인 의견 개진과 여론 형성이 필요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1번을 찍은 분들은 '뽑아준 공로'를 잊어야 한다. '우리 덕에 대통령이 되었으니 우리를 위해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발상은 새 정부가 일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우리가 만든 대통령이 정치를 잘하도록, 그래서 우리나라가 더욱 좋은 나라가 되도록 각자 자기 위치에서 돕는 것, 그것이 유권자의 책무다.
1번을 찍지 않은 분들은 더욱 역할이 중요하다. 우선 실망감·좌절감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민주적인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고, 우리 모두의 정부다. 건설적이고 건전한 비판은 하되 무조건적인 비난, 반대를 위한 반대는 나라에 혼란만 불러온다.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말했듯이,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지 바라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국민"이 되어야 하겠다. 대통령은 통합과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국민은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이번 선거가 남긴 교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