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새 정부의 실용주의적 원전 정책을 기대한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6.12 10:57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체코 원전 수출이 우여곡절 끝에 체결되었다. 이번 계약은 우리의 경쟁 상대였던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제기한 계약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방법원이 받아들이면서 한때 무산될 위기에 빠졌으나, 체코 최고법원이 가처분 결정을 취소함으로써 최종 성사되었다. 이번 계약 과정에서 EDF가 보여준 모습은, 유럽을 자기 앞 마당쯤으로 여기며 역외 업체의 원전 시장 진입을 결사적으로 막으려는 억지 그 자체였다.




EDF가 문제 삼는 건 크게 두 가지로, 입찰 과정과 건설단가이다. 한수원은 지난 입찰에서 경쟁사였던 EDF와 웨스팅하우스가 도저히 따라 올 수 없는 건설단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EDF는 한수원의 가격 경쟁력 배후에는 한국 정부의 보조금 있다는 소위 역외 보조금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 체코 원전 계약 연기는 역설적으로 한국 원전의 경쟁력을 대내외에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한수원의 원전 건설 비용은 킬로와트 당 3,571달러로, 7,931달러인 EDF 건설단가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전 건설단가는 다른 초장기 대형 공사와 마찬가지로 공사 기간에 비례한다. 원전 건설은 수조 원을 훌쩍 뛰어넘는 거액의 공사비가 들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보다 길어지면 건설 중 이자가 크게 늘고 납품 문제도 복잡해져 이런저런 추가 비용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전 건설 공기는 2024년 기준 평균 56개월로, 지난 20년간의 전 세계 평균 공사 기간 190개월의 1/3에 불과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EDF는 수 차례 기한을 못 맞춰 건설 예산이 늘어난 전례가 있다. 2007년 짓기 시작한 프라망빌 원전 3호기도 예정보다 12년이나 늦어 지난해에야 가동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예산은 4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면 한국 원전이 압도적 경쟁력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의 원전 기술이 미국이나 프랑스보다 크게 앞선다고 볼 수는 없다.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미국이나 프랑스와 달리 매년 표준화된 한국형 원전을 중단 없이 꾸준히 건설해 왔기 때문이다. 동일한 노형을 반복적으로 건설하다보니, 표준화된 설계를 바탕으로 설계비용을 줄일 수 있고, 공기 관리 노하우가 축적되면서 적기 준공이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1호기의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총 30기의 원전을 건설하거나 건설 중이다. 특히, 최신 한국형 원전인 APR1400도 국내에 4기, UAE에 4기가 건설 완료되었고, 새울 3,4호기는 완공이 눈앞에 있으며, 신한울 3,4호기는 최근에 착공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랑스는 2007년 12월에 착공되어 무려 17년 만에 완공되어 작년 12월에 전력망에 연결된 플라망빌 3호기가 최근 건설된 유일한 신규 원전이다. 미국도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건설된 신규 원전은 2024년에 상업 운전을 시작한 보글 3, 4호기가 유일하다.


세계적으로 바야흐로 원전 르네상스가 다가오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에 걸쳐 잠정 건설 계획 중인 신규 원전은 344기에 이르고, 더욱이 15년 내 건설 계획 중에 있는 원전만 해도 88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큰 시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원전은 핵무기와 관련되어 있어 국제 정치적 역학 관계에 민감하다. 최근처럼 진영 대립으로 치닫고 국제 질서에서, 원전 건설을 상대방 진영에 맡기기는 매우 부담스럽게 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원전을 러시아나 중국에게 맡기기 어렵다는 말이다. 결국 서방세계에서 발주되는 신규 원전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프랑스, 일본 정도가 차지할 공산이 크다. 현재와 같은 경쟁력 분포를 감안하면 우리가 독차지할 가능성도 높다.


우리나라의 원전 경쟁력 유지가 관건이다. 신규 원전 건설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명시적으로 언급하였지만, 원전에 대한 다소 애매모호한 입장을 견지했다. 원전은 수출 목적 외에도 대통령 1호 경제공약인 AI 산업 육성과 대선 토론의 독립 주제였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도 불가피한 전원이라는 점을 반영한 실용주의적 원전 정책이 하루속히 나와야 할 것이다.


이제는 에너지전환이라는 명분으로 기존 에너지믹스를 급격히 무너뜨리려는 에너지 반달리즘을 끝내야 한다. 국내 원전 생태계를 위기에 빠뜨린 탈원전 정책의 귀환은 기우가 되길 바란다. 그럼에도 대통령 주변을 감싸고 있는 탈원전 인사들이 어른거려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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