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조합 측 조건 수용 불가”… 현장에선 “불리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신현대 11차 아파트 단지 정문 전경. 임진영 기자
국내 시공능력평가 최선두, 아파트 브랜드 순위 톱을 달리는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상반기 마지막 '대어'로 꼽히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 2구역 재건축 공사 수주를 포기했다. 표면적으로는 조합이 내건 대안설계 및 금융조건 제한 조건을 수용할 수 없어 시공사 선정 입찰에 불참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적극적인 수주전을 펼치다가 갑자기 백기를 던진 모양새라 이런 저런 뒷말이 나오고 있다.
22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 20일 압구정 2구역 재건축조합 측에 시공사 선정 입찰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간 강한 수주 의사를 밝혀 온 것을 감안하면 갑작스러운 포기였다.
삼성물산은 압구적 2구역 재건축 조합이 최근 대의원회의에서 통과시킨 계약 조건에 대해 검토한 결과 '수주 불가'를 결정했다는 입장이다. 조합이 ▲대안설계 범위 대폭 제한 ▲모든 금리 CD+가산금리 형태로만 제시 ▲이주비 LTV 100% 이상 제안 불가 ▲추가이주비 금리 제안 불가 ▲기타 금융기법 등 활용 제안 불가 등 입찰 지침을 통과시켰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삼성물산 측은 “조합의 결정을 존중하나, 현 입찰 지침으로는 월드클래스 설계 및 디자인 등 당사가 구현하고자 하는 글로벌 랜드마크 조성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조합 측에 시공사 선정 입찰 불참 공문을 보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조합 안팎에선 삼성물산의 전격적인 입찰 불참 선언을 놓고 “불리하니까 백기를 던진 것"이라는 등 이런 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압구정 2구역 내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삼성물산의 철수에 대해 묻자 “불쾌하다"는 반응이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인근에 위치한 압구정 2구역 조합 사무실 전경.
압구정 2구역에 속해 있는 압구정 신현대 11차 단지 내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삼성물산이 내건 대안설계는 주민 입장에서 공사비만 증가하고 재건축 완료 시 실질적으로 주민 입장에서 이득이 없는 제안"이라며 “삼성이 내건 금융 조건도 현대건설과 비교해 금리 차이가 1%도 나지 않아 실질적으로 설계 변경으로 증가하는 공사비를 감안하면 오히려 조합원들이 손해 보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조합에서 직접 설계사무소를 통해 더 유리한 조건으로 재건축 설계를 진행하는 것이 삼성물산 설계안보다 나을 것 같다"며 “현대건설은 단지 옆 현대백화점과 바로 현장을 연결하는 입주민 전용 통로를 만드는 등 실질적으로 재건축 후 주민 생활과 피부에 닿는 공사 조건을 제시하는데 삼성은 실체가 불분명한 대안설계나 복잡한 금융조건을 내세워 조합원들을 현혹하는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합원 중 연배가 높은 고령층 주민들은 '압구정현대'라는 상징성 때문에 당연히 현대건설로 재건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라며 “삼성물산이 재건축 하겠다고 여러 말을 하는데 애당초부터 '현대가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주민이 워낙 많아 삼성물산이 입찰 넣고, 시공사 선정 투표를 했어도 어짜피 안 됐을 것이 뻔하다"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도 “삼성물산이 조합 요구 조건이 맞지 않아 빠지겠다고 하는데 말도 안되는 변명"이라며 “현대도 삼성과 (조합이 내건 조건에서) 마찬가지 상황인데 왜 현대건설은 계속 가나. 삼성이 투표에서 현대에 말도 안 되게 져서 망신당할 것 같으니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하고 조합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삼성물산이 압구정 2구역 재건축 수주를 포기한 이후에도 여전히 3호선 압구정역 내부에 삼성물산의 압구정현대 아파트 재건축 홍보물이 전시돼 있다. 임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