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유럽연합(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이하 “CBAM")를 세계 최초로 시행하고 있다. CBAM이란 EU 역외에서 생산되는 對EU 수출품에 대하여, EU 역내에서 EU 배출권거래제의 적용을 받고 생산되는 동일 상품이 부담하는 탄소 가격과 동일한 비용을 '관세와 유사한 국경조정세(Border Tax Adjustment)'로 부과하는 제도이다. 비록 지난 6월 18일 EU 이사회와 EU 의회가 CBAM 면제 기준 변경에 합의해 소규모 기업은 CBAM 적용 면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여전히 고탄소 배출 산업의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 중 99%를 규율한다는 규제 목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본격 시행을 앞두고 이행을 지속가능하도록 현실화 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 주목할 것은 미국내 발의된 관련 법안이다. 2023년 11월 공화당 캐시디(Cassidy)와 그레이엄(Graham) 상원의원은 '해외오염세법(Foreign Pollution Fee Act, FPFA)'를 처음 발의한 후, 지난 4월 8일 상세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미국산 제품보다 배출집약도가 높은 수입품에 국경조정세를 부과하는 내용으로, 국경조정세는 수입품의 관세 가치(Customs Value)에 '가변 비용(Variable Charge, %)'을 곱하여 산정되는데, 배출집약도 차이에 따라 3단계(Tier)로 차등화된 가변 비용이 적용된다. 자국내 시행 중인 배출권거래제 가격과 연동되어 있는 EU CBAM과 달리, 자국내 연방차원의 탄소가격을 부과하고 있지 않은 미국의 경우 미국 제품의 배출집약도와 수출국 재퓸의 배출집약도를 비교해 국경조정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즉, 미국 제품 대비 배출집약도 차이가 10%를 초과하는 제품부터 관세가 부과되며, 오염도가 가장 심한 3등급(Tier 3) 제품은 최대 100%에 달하는 세율이 적용될 수 있다.
최근 개정안에는 적용 대상 품목 역시 기존 6개(알루미늄, 시멘트, 철강, 비료, 유리, 수소)에서 태양광 및 배터리 부품을 더한 8개로 확대되었으며, 중국 등 비시장경제 국가나 해외우려기업(Foreign Entity of Concern, FEOC) 생산품에는 최대 4배의 가중치가 가변비용에 적용될 수 있어 중국 견제 의도도 엿볼 수 있다. 동 법안은 향후 의회내 논의 과정에서 내용 변경 및 합의 여부를 지켜봐야 하고 법안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 집권당이 지향하는 탄소국경세의 상세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침 동 법안에 대한 분석도 이달 초 하버드 케네디스쿨 벨퍼 센터(Belfer Center)가 발표한 논문에서 확인된다. 이 연구에서는 알루미늄, 시멘트, 철강 등 주요 산업에서 대부분 교역 상대국의 평균 배출집약도가 미국보다 높다고 산출되었고, 특히 알루미늄은 약 113%, 철강은 약 57%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낸다. 이는 FPFA와 같은 제도가 미국 산업에 가격 경쟁력을 부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법안이 현실화될 경우 첫해에만 한국으로부터 약 4억 5,600만 달러(주로 철강, 태양광, 배터리 부품)의 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 점도 흥미롭다.
EU 및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은 2027년부터 도입되는 자체적인 CBAM 제도를 공식화했고, 호주 역시 탄소 누출 제도 설계 검토를 위한 협의회를 운영하는 등 탄소국경세는 새로운 국제 무역 규범으로 자리 잡아 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제품의 배출집약도가 수출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는 글로벌 규범 확대 흐름 속에서 우리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선 제품 수출 시 탄소국경세로 인한 수출가격 변화를 계산해 보고, 경쟁국들과 비교해 경쟁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제품의 배출집약도를 낮춤으로써 국경조정세 지불을 최소화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먼저 시작된 EU CBAM에 대한 준비를 통해 저탄소제품 시장경쟁력을 확보하되, 국경조정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배출보고서를 작성해 봄으로써, 비용 최소화를 시뮬레이션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제품별 탄소비용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제품 단위 탄소 데이터 체계를 구축하고 성과관리 기반을 마련하여 이미 제품의 탄소 감축을 의무화하기 시작한 선진 시장에서의 제품경쟁력을 선제적으로 강화하는 체계 구축도 필요하다. 그 동안 탄소배출은 감축요구 대응으로 우리 기업에게는 방어적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상술한 탄소가격 부과의 글로벌 흐름이 지속된다면, 제품의 저탄소경쟁력을 먼저 갖출 경우 오히려 공격적 요소가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쟁 심화 속에서 늘 차별화를 고민해 온 우리가 이 요소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