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당장 처리’·국힘 ‘보완 병행’ 전환…재계 “경영권 위협 최소화 절충안 찾자”
법사위 심사 앞두고 ‘병합설’ 부상…소액주주 보호·기업 안정 사이 줄타기

▲1일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심사를 위한 종합정책질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반대하던 국민의힘이 사실상 처리에 동의하면서 오는 4일 본회의 표결 통과가 유력해졌다. 이에 따라 재계의 시선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최종 심사 과정에 쏠리고 있다. 결과에 따라 현재 상정된 강경안 안이 그냥 통과될 지, 아니면 다소 완화된 수정안이 통과될 지 등이 달려 있다. 재계 입장에선 사소한 차이라도 큰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만큼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법사위는 이날부터 이틀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민주당이 제출한 상법 개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5일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부과 △ 감사위원 선출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 의결권 3% 제한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투표제 강화 △ 전자 주주 총회 도입 △ 사외이사의 독립이사 전환 등의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이 법안은 올해 초 민주당이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효화 된 것보다 한층 강경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시행시기가 앞당겨졌다. 전자주주총회의 경우 해당 시스템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1년의 유예를 두지만 나머지는 대통령이 공포한 날부터 바로 시행하기로 했다. 3%룰 개정안도 새로 추가된 것이다. 대주주의 지나친 영향력 행사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경제6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마지막 의견 수렴에 나섰으며, 일부 조항에 대한 보완 가능성은 열어두되 “당장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기존 방침엔 변화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정치권, 재계에서는 그러나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일부 강경한 조항이나 민원이 심각한 내용이 수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선 야당인 국민의힘이 전날 기존 '개정 반대'에서 '보완 논의 후 가능'으로 입장을 선회해 극적인 '절충안' 채택 가능성이 열렸다. 재계도 전날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 의장과 간담회에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강하게 표시했고, 진 의장도 “문제가 있으면 고치겠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은 국내 자본시장 신뢰 회복과 개인투자자 중심 구조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대선에서 주식 시장 활성화를 위해 상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여러 차례 공약했었다. 상법 개정을 통한 '금융시장 민주화'를 강조하며 개인 투자자 보호를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이는 표심과 직결됐다. 1400만 명에 달하는 개인 투자자는 30~40대 중산층의 대표적 자산 계층이며, 이재명 정부의 핵심 지지층과도 겹친다.
특히 이 대통령 취임 후 국내 주식 시장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코스피 지수가 3000대를 회복하고, 또 다른 자산 시장이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자본 시장인 주식 시장을 활성화해 대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상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당은 이날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법개정안을 상정해 심사한 뒤, 6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본회의를 열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윤석열 정부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던 일반 법안 중 국회 문턱을 넘는 첫 법안이 된다.
국민의힘도 '개정 반대'에서 '보완 논의 가능'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다만 세제 혜택 병행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의원 총회를 마친 후 “그동안 자본시장법을 통한 대안 접근을 추구해왔지만, 일부 기업의 불공정 사례는 상법 개정 없이는 주주 보호가 어렵다는 판단"이라면서 “주주친화적 기업에 대해 배당소득 분리과세, 고배당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방안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규제는 강화, 보상은 약속'이라는 패키지형 협상 전략을 내건 셈이다.
당내 일부 의원들 사이에선 “주식이 30~40대 중산층의 주요 재산수단이 된 지금, '개미 표심'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이 곧바로 '국내 증시 활성화 정책'으로 인식된 상황에서 반대만 해서는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재계는 부작용을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영권을 흔드는 독소조항이 많아 소송 남발·투자 위축 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공정한 자본시장엔 이견이 없지만, 이번 개정안은 기업을 무분별한 소송과 배임 혐의로 몰아넣을 수 있다"며 “투자 판단조차 사후적으로 범죄가 될 수 있는 위험한 구조"라고 우려했다.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 조항은 해외 헤지펀드 등 외부 세력이 특정 의사를 표적으로 삼아 경영권을 흔드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소·중견기업계는 기업 규모에 따른 유예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전자투표제도나 집중투표제 도입에 필요한 법무·전산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건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정칙권 일각에선 법사위 심사 과정에서 일부 조항에 대한 시행 유예나 예외 규정을 두는 방식의 타협안이 나올 수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번 개정안에 새로 추가된 '3% 룰(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 3% 제한)'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조항은 도입 시점을 늦추거나 대상 기업 범위를 조정할 수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번 상법 개정 논의는 단순히 법 조항의 수정 문제가 아니라, 자본시장 신뢰 회복과 기업 경영 환경 안정이라는 두 대의 축이 충돌하는 전선"이라며 “민주당은 제도 개혁을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외치고, 재계는 과잉 규제가 기업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반발하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제 논란의 핵심은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가 아니라 '어떤 내용이 언제부터 누구에게 적용되는가'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7월 임시국회는 '정책 효능감'과 '기업 수용성'이 조화를 이루는 절충안이 등장할 수 있을지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