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리즈] 나는 네가 전 정부 때 한 일을 알고 있다 (4) – 의사정원편
윤 정부는 숫자를 밀어붙였고, 이재명 정부는 구조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기획-④] “2천명 늘린다고 끝날까?](http://www.ekn.kr/mnt/file_m/202508/news-p.v1.20250801.7d405c59cc3044fd829ff77a0c1142af_P1.jpg)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은지 기자)
2024년엔 “2천 명 늘린다"는 대통령의 선언으로 불붙었고, 2025년엔 “그 숫자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부터 시작됐다. 이제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정책이 어디서 틀어졌는지를 아는 일이다.
2024년 2월 6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의대 정원 확대의 필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의사 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원 확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그로부터 불과 열흘 뒤인 2월 19일,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늘리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정원 65% 증가. 정부는 이 정책으로 2035년까지 누적 1만명의 의사를 추가 배출할 계획도 제시했다.
증원 배경은 분명했다. 초고령사회, 필수의료 붕괴, 지방 의료공백. 하지만 정책에서 빠진 게 있었다. '설계도'와 '협의 구조'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총사직서를 제출했고, 응급실·중환자실 운영 병원은 현장 공백을 호소했다.
의협은 “정부가 단 한 차례 협의 없이 수치를 일방적으로 발표했다"고 반발했다.
당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원 2000명 증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인 제가 결정한 사안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문가 자문과 내부 분석에 따라 결정했고, 대통령실은 보고만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책의 핵심 당사자인 의료계와의 협의는 없었다. 교육부는 대학에 희망 정원만 요구해 받아들였고, 지역 안배 기준·교육 여건 검토 없이 정원을 배분했다.
그 결과는 현장과의 충돌, 정책 혼란, 실행 중단이었다.
2024년 5월 윤 대통령 탄핵 이후, 증원 계획은 사실상 폐기됐고 '2000명'은 정부 문서에서 사라졌다.
2025년 7월 31일, 이재명 정부는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학계, 시민단체, 의료계 등 1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8월 중 첫 회의를 열고 2027년 이후 의대 정원 정책의 기초 데이터를 설계할 예정이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정원 증원은 단순히 몇 명을 늘릴지가 아니라, 어디서 어떤 의료를 할 수 있을지를 판단해야 하는 일이다"고 발언했다.
이번엔 '얼마나 뽑을까'가 아니라 '왜 부족하고, 어디서 부족하며,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먼저였다.
이재명 정부는 정책의 초점을 '증원'이 아니라 '구조 개편'에 맞추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배치하고 유도하고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먼저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예고했다. △지역의사제 확대: 지방 의대 졸업생을 일정 기간 지역 의료기관에 의무 배치, △전공 유도 인센티브: 필수 진료과 선택자에게 장학금·채용 보장 제공, △수련환경 개선: 전공의 수련 인프라 확충, 병원별 비용 보전책 도입, △주치의제 도입: 외래 진료를 1차 의료 중심으로 전환해 대형병원 쏠림 완화 등 복지부는 이러한 전략을 통해 지역·필수의료 분야 중심의 인력 유입을 유도하고, '얼마나'보다 '어디에'와 '어떻게'를 중심에 놓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수급추계위원회 구성에 대해 “비교적 납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의협 김성근 대변인은 “정부가 발표한 추계위 명단은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가 비교적 납득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앞으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의사 인력 규모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의료 사태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 당시 의정협의체조차 열리지 않았던 구조와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의대 정원은 숫자지만, 의료정책은 사람과 시스템의 문제다. 윤석열 정부는 정답부터 말했다.
그러나 현장은 설득되지 않았고, 결과는 사직서와 정책 보류였다. 이재명 정부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질문은 곧 구조로 이어졌고, 그 구조는 '얼마나'보다 '왜, 어디서, 어떻게'에 닿는다.
정답부터 말한 정부는 실패했고, 지금은 질문부터 던지는 정부가 의료 인력 시스템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