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AI 시대, 미래산업의 혈맥 ‘자원개발 거버넌스’를 다시 짜야 한다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8.11 10:58

하윤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하윤희

▲하윤희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새 정부가 인공지능(AI) 산업 육성을 국가 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삼은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고무적인 일이다. AI는 반도체를 이을 대한민국의 핵심 성장 동력이자, 전 세계 주요국이 미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주권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책 방향 덕분에 AI 성장에 필수적인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과 전력망 구축이 핵심 국가 의제로 부상했다는 점은 더욱 반갑다.




그동안 에너지 정책은 어딘가 편중되어 있었다.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전환과 이에 따른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강화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과 이를 뒷받침할 전력망 확충은 우리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러한 외침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늘 밀려나기 일쑤였다. 그랬던 에너지와 전력망 이슈가 정부의 플래그십 정책인 AI와 맞물려 전면에 등장한 것은,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국가적 과제 측면에서도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왕 물꼬가 트였으니, 이 기회에 에너지 정책 전반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 업계에는 “대한민국에는 전력만 있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있다. 실제로 최종에너지 소비의 절반 가까이가 전기 에너지가 아닌 열에너지다. 산업 공정, 건물 난방 등에 막대한 열이 사용되지만, 열에너지 정책은 늘 뒷전이었다. AI 시대의 상징인 데이터센터만 해도 그렇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서버의 열을 식히기 위해 또다시 엄청난 전력이 소모된다. 그러나 강물이나 바닷물을 활용하는 수열에너지와 같은 친환경 냉각열을 활용한다면, 전력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탄소중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제라도 전력과 열, 그리고 효율화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에너지 정책 설계가 시급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비어있는 퍼즐 조각이 있다. 바로 '자원개발' 정책이다.


AI,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미래 성장 산업의 혈맥은 결국 희토류, 리튬, 니켈, 코발트와 같은 핵심 광물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특정 자원이 어떻게 무기화될 수 있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이들 자원은 지리적으로 일부 국가에 편재되어 있고, 제련 및 가공 기술은 중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미국, 유럽 등 서방 선진국들은 더 이상 자원 공급망을 민간 기업의 손에만 맡겨두지 않는다. 국가가 직접 나서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을 재편하고, 자원 확보와 개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새로운 국제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있다.




미래 에너지원인 수소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필요한 수소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도입해야 한다. 이는 19세기 말부터 서구 열강들이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벌였던 총성 없는 전쟁이 '수소'를 둘러싸고 21세기에 재현될 것임을 예고한다. 이러한 거대한 지정학적, 지경학적 변화의 파도 속에서, 과연 대한민국은 자원개발 영역에서 계속 한발 물러나 있어도 괜찮은 것일까?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초라하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의 '자원외교' 실패 트라우마는 자원개발 기능의 전반적인 위축으로 이어졌다. 해외 자원개발의 선봉이었던 한국광물자원공사는 광해관리공단과 통합되어 '한국광해광업공단'으로 바뀌면서 사실상 개발 기능을 상실했다. 석유와 가스는 종종 같은 광구에서 발견되어 함께 개발하는 것이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는 여전히 분리된 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글로벌 자원 메이저들과 경쟁하기에는 역량과 자본이 분산되어 힘을 쓰기 어려운 구조다.


자원개발은 수십 년의 긴 호흡과 막대한 자본, 그리고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한 국가 백년대계의 인프라 사업이다. 이제 낡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릴 때다. 광물, 석유, 가스, 그리고 미래의 자원인 수소까지 아우르는 '통합 자원개발 공기업'의 설립을 제안한다. 분산된 전문성과 자본을 한데 모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탐사부터 개발, 생산, 비축, 그리고 국제 협상까지 전 주기를 관장하는 강력한 '자원 안보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통합 공기업은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과 긴밀히 연계하여 동맹국과의 자원 협력을 주도하고, 민간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든든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AI 강국이라는 목표는 견고한 에너지 시스템과 안정적인 자원 공급망이라는 토대 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AI의 두뇌인 반도체와 몸인 데이터센터를 만드는 데 희토류와 리튬이 필요하고, 그 거대한 인프라를 24시간 깨어있게 할 막대한 전력을 생산하는 풍력발전기와 에너지저장장치(ESS)에도 똑같이 희토류와 리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즉, 미래 산업의 '재료'와 '연료' 모두가 동일한 자원 공급망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새 정부가 AI라는 미래를 향한 문을 활짝 연 만큼, 그 미래를 뒷받침할 '자원개발 거버넌스'라는 주춧돌을 바로 세우는 일에 즉시 착수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 자원 안보의 새로운 100년 계획을 설계할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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