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 이하 빚 올해 갚으면 신용 사면
도덕적 해이, 성실 상환자 역차별 지적
연체 차주 평가 어려워 은행 건전성 영향
당국 “막연한 지원 기대로 불이익 감내 안 해”

▲정부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의 채무를 탕감해 주는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신용 사면까지 더해지며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올해 말까지 5000만원 이하로 연체한 빚을 갚으면 연체 기록을 완전히 삭제하는 '신용 사면'을 실시한다. 하지만 이를 두고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와 성실 상환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은행권에서는 차주의 연체 이력이 사라지면 향후 연체율 상승 등의 가능성이 있어 건전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2020년 1월부터 이달 31일까지 총 5000만원 이하의 개인·개인사업자 대출 연체를 올해 말까지 전액 상환하면 연체이력 정보를 삭제하는 신용회복 지원조치를 내달 30일부터 실시한다. 코로나19와 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 등으로 불가피하게 채무 변제를 연체한 서민·소상공인이 전액 상환 후 정상적인 경제 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연체이력 정보 공유와 활용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연체금을 모두 갚아도 연체 기록이 신용정보원에 최대 1년, 신용평가사에 최대 5년간 남아 신규 대출이나 대출 금리, 한도, 카드 이용 등에 불이익이 있었다. 금융당국은 이번 조치로 채무변제를 완료한 차주들의 신용평점이 상승해 이 같은 불이익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
당국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5000만원 이하 연체를 보유한 개인·개인사업자는 약 324만명이다. 이 중 약 272만명이 전액 상환을 완료해 신용회복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남은 약 52만명도 연체금을 연말까지 상환하면 신용회복 지원을 받을 수 있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의 채무를 탕감해 주는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는 가운데, 신용 사면까지 더해지며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차주들의 박탈감도 커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체 기록이 주홍글씨처럼 남아 있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어려웠던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조치"라면서도 “빚을 당장 갚지 않아도 어차피 정부가 도와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갚을 능력이 있는 차주들도 제때 대출 상환에 나설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용 불이익을 없앤다고 하니 연말까지 부랴부랴 빚을 갚는 경우가 생길 텐데, 그동안 힘들게 빚을 갚은 성실 상환자들에게는 불공정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권에서도 우려의 소리가 나온다. 은행의 신용평가 시스템은 과거 상환·연체 기록이 주요 기준 중 하나인데, 연체 기록 삭제로 차주의 실제 상환 능력과 신용위험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채무상환 능력 평가 시 연체 기록이 사라져 예상하지 못한 대출에서 연체율이 늘어날 수 있다"며 “위험 차주를 가려내기 힘들어 자산건전성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은행에서는 진성 우량 고객을 구분하기 위한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며 “신용평가 관리에서 왜곡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전액 상환한 차주만을 대상으로 정하고 있어 도덕적 해이 우려는 제한적"이라며 “신용회복 지원을 실시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로 연체에 따른 불이익을 장기간 감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