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지난 8월 18일자 영국 가디언지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 일본의 34세 소설가 리에 쿠단이 ChatGPT를 활용해 쓴 소설 『심파시 타워 도쿄』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작품의 5% 정도가 AI로 작성하였다는 사실을 작가 스스로가 알리면서 일본 문단은 물론 전 세계에서 텍스트 문예 전문가 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이 상황을 보며 나는 다른 질문을 하게 됐다. 관심의 초점이 “AI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맞춰져 있는 동안,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작가가 AI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는가"였다. 리에 쿠단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AI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인간의 사고 과정을 반영할 수 있다." 그녀는 AI를 단순한 글쓰기 도구가 아닌, 사고를 확장하는 대화 상대로 활용했던 것이다. 나아가 리에 쿠단은 더 이상 출판사나 평론가가 원하는 답을 찾아 헤매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정말 알고 싶었던 것—현대 일본 사회의 동정심 문화, 언어 변화가 사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AI와 함께 탐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온 질문들이 수상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AI 시대의 근본적 변화를 상징한다. 우리는 더 이상 남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지식을 쌓는 것에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알고 싶은 것을 찾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온통 '정답 찾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이 문제의 답이 뭐지?" 아이들은 선생님이 원하는 정답을 맞히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문제집을 푼다. 중고등학교에서는 더 치열해진다. 대학 입시라는 하나의 정답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교실에 앉아 있다. 대학에 들어가면 조금 나아질 줄 알았지만, 이번엔 취업이라는 새로운 정답을 찾아야 한다. “면접관이 원하는 답이 뭘까?" 자기소개서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 작성되고, 면접 답변은 인터넷에 떠도는 '모범 답안'을 외우느라 바쁘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원하는 게 뭘까?" “이 프로젝트의 성공 기준은 뭘까?"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MBA를 밟고, 각종 자격증을 따고, 업무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다. 퇴근 후 시간과 주말까지 반납하며 끊임없이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는 지식을 쌓아간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또 다른 정답 찾기가 시작된다.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서를 읽고, 부모 교육을 받고, 아이 교육비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한다. 아이에게도 같은 길을 걷게 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정답을 향해.
그런데 이 모든 노력이 얼마나 허무한지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10년 전 열심히 딴 컴퓨터활용 자격증, 지금은 쓸 일이 없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 지식의 70%는 실무와 거리가 멀다. 몇 백만원을 들여 수강한 마케팅 과정에서 배운 내용들, 요즘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 더 충격적인 건 AI의 등장이다. 미국에서 ChatGPT는 변호사 시험에서 상위 10% 성적을 기록했고, GPT-4는 의사 국가고시를 통과했다. 우리가 밤새워 외운 지식들을 AI는 몇 초 만에 더 정확하고 체계적으로 제공한다.
AI 시대의 전문성은 더 이상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만드는 것'이다. 리에 쿠단이 아쿠타가와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기존 문학 지식을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누구도 묻지 않은 질문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의사도 이제 의학 지식을 많이 외우는 것보다, 환자의 복잡한 상황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정교한 질문으로 변환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변호사도 판례를 많이 암기하는 것보다, 복잡한 법적 상황을 AI와 함께 분석할 수 있는 질문 설계 능력이 핵심 경쟁력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수동적 학습에서 능동적 질문 창조로 전환할 수 있을까?
첫째, 나만의 궁금증을 찾아라. “취업에 도움이 되려면 뭘 배워야 할까?" 대신 “내가 정말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일까?"를 물어보자. 리에 쿠단처럼 자신만의 관찰과 경험에서 출발한 질문이 가장 강력하다. 둘째, 구체적 맥락을 더하라. “성공 방법을 알려주세요" 같은 추상적 질문이 아니라, 나의 상황, 제약 조건, 목표를 구체적으로 담은 질문을 만들어라. 그래야 내게 맞는 맞춤형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셋째, AI와 대화하듯 질문하라. 일방적 명령이 아니라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 같나요?" “제가 놓치고 있는 관점이 있을까요?" 같은 식으로 협력자로서 AI의 다양한 관점을 활용하라. 넷째, 질문을 계속 발전시켜라. 첫 번째 답변에 만족하지 말고,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같은 후속 질문으로 탐구를 심화하라.
80년간 지속된 '정답 찾기 경쟁'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수동적으로 지식을 쌓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것을 위해 능동적으로 질문을 만들고, AI와 함께 답을 찾아가는 시대가 왔다.
오늘부터 우리도 시작해보자. “남들이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 대신 “정말로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이를 위해 어떤 질문을 만들어야 할까?"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쌓인 나만의 질문들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새로운 전문성이 되어,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질문하는 자가 미래를 주도하는 시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