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뭐에 꽂힌다'는 말이 있다. 이는 어느 하나에 몰두한다는 뜻으로 균형감을 잃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추구해야 될 가치는 다양하다. 특히 공공부문에서는 그렇다. 민간부문에서는 돈 하나만을 위하여 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에서는 양립되지 않는 여러 가지 가치를 양립시키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비정부기구(NGO)도 균형감을 가지지 않는다. 이들은 다양한 가치 가운데 어느 한 가지에 주목하고 이를 위해 활동한다. 환경단체는 환경 하나만이 가장 중요하다. 노동, 인권, 장애인 등의 단체도 그들이 추구하는 어느 하나만을 강조한다. 산업발전, 국부창출, 국가의 미래... 이런 것들을 동시에 고려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도 논리의 전개도 간단명료하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따라서 다른 주장을 하는 여러 단체와 균형을 맞추는 조정의 과정을 누군가 해야 한다.
이것이 정부이다. 그래서 정부가 뭐 하나에 꽂힌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물론 정치인은 다르다 정치인은 뭐 하나에 꽂힐 수 있다. 특히 시급한 현안, 당무, 인기영합을 위해 뭐 하나에 꽂힐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균형을 잡아줘야 될 것은 행정부이다. 그런데 행정부마저도 정치와 마찬가지로 균형감을 잃어버리게 되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 이번 정부에 개혁안 가운데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이라는 주제가 있다. 이는 에너지와 관련된 부서와 환경과 관련된 부서를 하나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하나의 사안에 대하여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는 부서가 함께 있어야 균형을 취할 수 있다.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안건을 만들면 상정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지루한 조정의 과정이 있다. 그게 민주적인 정부이다. 만약 이게 바람직하지 않다면 정책부서는 대통령실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정부는 모두 집행부서로 만들면 된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의 행정이력을 살펴보면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제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축구로 치면 선수들이 포지션을 지키면서 시합을 해야 하는데 모든 선수가 공을 따라 다녔다. 환경부의 입장에서 에너지 정책은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공해의 배출을 줄이는 것이다. 이 차원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이 강조되었어야 하는데 여기도 색안경을 끼는 바람에 원자력을 지지하지 못했다. 산업부는 전기요금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고 미래 먹을 거리를 창출할 에너지 산업이 무엇인지를 판단했어야 했다. 또 산업 안보를 위한 전략성 차원에서 어느 에너지원이 적절한지를 검토하여 이에 따른 정책을 수립했어야 했다.
그런데 산업부는 마치 자기가 환경부인 양 재생에너지 확대만 끼고 돌았다. 전기요금이 얼마가 되든지 수출산업에 어떤 장애가 발생하던지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전기품질이나 안정성도 별 관심이 없었다. 한전의 부채도 내팽개쳤다. 그 때문에 산업체가 도산하거나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산업부는 균형을 잡아야 할 행정부가 아니라 꽂힌 정치의 이중대처럼 행동하였다. 그러니 환경부와 산업부를 둘로 나누어서 각각의 입장을 존중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정이 필요없으니 합쳐도 무방한 것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은 산업부가 색깔을 잃은 행정의 결과일 뿐이다.
20년 전과 비교할 때 지금은 입법부의 힘이 말도 안되게 강해졌다. 삼권분립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국회가 행정과 사법에 영향을 미친다. 국회의원 출신은 서로 봐주는 분위기이다. 국회의원 출신을 장관으로 모시신다면 행정부도 업무하기 편하다. 그 편안함이 독(毒)이다. 삼권분립에 따른 균형 이런 말의 이면은 마찰이다. 마찰이 없으면 균형은 없다.
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안정성, 가격 그리고 환경의 가치는 마찰 없이 균형이 잡히지 않는다. 재생 에너지 위주의 정책을 하고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면 전기요금은 10배로 오를 것이다. 이것은 멋대로 이행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할 사항이 아니고 수용 자체에 대해서 물어야 할 사안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행정부가 제 자리를 찾기를 원한다. 산업부와 환경부를 합친다는 것은 정권의 입맛에 딱 맞는 목소리를 내기는 좋지만 국민에게 좋은 선택을 하기는 어려운 구조이다. 그래서 나는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