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5일제, 과거처럼 주 4일제로 가는 징검다리 될까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9.11 14:16

지자체·민간기업 중심으로 주 4.5일제 도입 확산

이재명 정부, 주 4.5일제 도입 후 장기적으로 주 4일제 추구

“기술 변화로 근로시간 단축 공감대…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대화 필요”

직장인

▲직장인

주 4.5일 근무제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기업에서 시범 도입되는 등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주 5.5일제에서 주 5일제로 전환된 과거 흐름을 고려하면 향후 주 4일제로의 전환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저성장·고령화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과거와 같은 속도로 전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주 4.5일제 일부 지자체 시범 도입…민간기업도 선제적 도입

주 4.5일제는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미 시범 도입되는 중이다. 제주도는 작년 7월부터 월~목요일 근무 시간을 늘리고 금요일에는 오후 1시에 퇴근하는 이른바 '13시의 금요일'을 운영하고 있다. 강원 정선군은 같은해 9월부터 8세 이하 자녀를 둔 7급 이하 공무원과 공무직을 대상으로 격주 주 4일제를 시범 시행했다. 경기도는 올해부터 도내 기업 67곳과 공공기관 1곳을 대상으로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민간기업에서도 선제적으로 도입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보안업체 슈프리마는 지난 2017년부터 매주 금요일 오전만 근무하는 주 4.5일제를 시행 중이다. ICT업계에서는 SK텔레콤이 '해피프라이데이' 제도를 통해 금요일 조기 퇴근 문화를 정착시켰다. 카페24는 오는 7월부터 금요일을 유급휴무로 지정해 사실상 주 4일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교육기업 휴넷은 주 4.5일제에서 주 4일제로 전환하며 입사 경쟁률과 직원 만족도를 동시에 끌어올렸다.



◇ 주 4.5일제 도입 中企 장려금 지급 등 방안 마련…해외도 주 4.5일제 과도기적 단계 활용

이재명 정부는 국정과제인 주 4.5일제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주 4.5일제를 도입하려는 중소기업에는 월 20만~50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하며, 이를 위해 내년 예산에 277억 원을 새로 반영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공약에서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대해 확실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장기적으로는 주 4일제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나라 평균 노동시간을 오는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이하로 단축하겠다는 의미다.


해외 사례에서도 주 4.5일제는 주 4일제로 가는 과도기적 단계로 활용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지난 2015~2019년 공공부문에서 주 4.5일제를 시험해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확인한 뒤 주 4일제로 확산시켰다. 영국은 지난 2022년 70개 기업이 주 4.5일제 혼합 실험을 통해 생산성과 근로자 만족도가 개선되자 주 4일제를 채택했다. 아랍에미리트(UAE)도 같은해 공공부문에 주 4.5일제를 도입했으며, 일부 민간기업은 주 4일제까지 시도했다.




◇반일 근무제 비효율성에 사회적 논란…단계적 시행·사회적 합의로 주 5일제 연착륙에 성공

주 5.5일제에서 주 5일제로 전환될 당시 반일 근무제의 비효율성이 사회적 논란으로 떠올랐다. 토요일 오전 근무가 형식적으로 유지되면서 실질적인 업무 생산성은 떨어지고, 근로자의 피로만 가중됐기 때문이다. 특히 관공서와 기업에서는 토요일 반일 근무가 외부 거래처와의 협업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출근은 하지만 일은 안 되는 날'로 여겨졌다. 이로 인해 전력·교통 등 사회적 비용은 발생하지만 업무 효율은 낮아 구조적 모순으로 지적됐다.


지난 2004년 주 5일제 도입은 당시 재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단계적 시행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연착륙에 성공했다. 생산성 하락, 인건비 증가, 국제 경쟁력 저하 우려 등의 반대 논리에도 생산성은 장기적으로 유지되거나 일부 업종에서 개선됐으며 근로자 삶의 질 향상과 내수 소비 촉진에도 기여했다. 과거 주 5일제 전환처럼 점진적 시행과 사회적 합의, 정책적 보완이 뒷받침된다면 주 4일제로의 전환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다만 1%대 저성장 시대라는 환경은 도입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변수다.


◇ “장기적으로 근로시간 단축 피할 수 없는 흐름…기술적으로 가능하나 서두를 일 아냐"

전문가는 인공지능(AI) 등 기술변화로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AI 활용으로 인간이 직접 해야 할 일은 줄어들고 있어 장기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곧바로 사회적으로 정착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노사관계, 고용제도 등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단축 근무로 얻는 이익보다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 본부장은 산업별·규모별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보통신(IT)을 기반으로 하는 업종의 경우는 재량근로가 가능하고 생산성이 근무시간에 반드시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4.5일제든 4일제든 가능하다"면서 “반면 제조업 현장에서는 근무시간에 일을 해야만 생산성이 올라가기 때문에 감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단축한 근로시간만큼을 상쇄할 수 있는 어떠한 조치가 없으면 부작용이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 본부장은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해서도 신중론을 폈다. 그는 “정부가 법으로만 (일방적으로) 주 5일제를 주 4.5일제로 바꾸려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여론을 형성해 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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