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명성은 모래성…위기 관리의 핵심은 ‘겸허·전략’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09.21 12:04

비욘드 리스크: 위기를 넘어 기회로, 위기관리 인사이트 | 김왕기 | 메디치미디어

비욘드 리스크 / 메디치미디어

▲비욘드 리스크 / 메디치미디어

명성은 모래성이다. 모래알 하나 하나를 집어 모래성을 만들 듯 명성은 아주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들여 형성된다. 사람의 입에서 언론의 평가로 이어지고, 그 평가도 검증에 검증을 거쳐 명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명성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작은 파도만 들이쳐도 순식간에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도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평판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두 사람만 거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러나 평판을 무너뜨리는 말은 바이러스처럼 무섭게 확산한다. 매일 매순간 평판이 무너지는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사소하게 여겼던 일이 한 순간에 기업의 존립을 흔들고, 개인에게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힌다. 조직 전체가 흔들려 문은 닫는 기업도 있고, 치욕과 불명예는 물론 법적 처벌을 받는 개인도 있다. 굴지의 기업인들, 고위 공직자들, 유명 정치인이나 셀럽들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렇게 평판이란 게 무섭다.



언론은 물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등에서 명성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은 실시간 감시를 받는다. 마치 투명한 유리 상자 속에 갇힌 것처럼 공사를 막론하고 생활이 노출된다. 그렇게 노출된 정보 중에 한 터럭만 잘못 알려지면 평판은 깨지고 만다.


법무법인 율촌에서 위기관리 자문을 맡고 있는 김왕기 저자에 따르면, 명성이 중요한 사람 중에 아직도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는 억울하다", “이건 다 관행이었다"라고 주장하며 사태를 축소하거나 부정하기 급급하다 위기를 악화시킨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조금만 더 겸허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사례를 목격하며 안타까운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위기를 교통사고에 비유한다. '가벼운 접촉으로 끝날 수도, 한순간에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 수도 있다. 순간의 판단이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실제 사고에 부닥치면, 상당수는 그 상황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는커녕 포크레인으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버리곤 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마련하라", “문제가 생기면 CEO가 바로 직접 나서라"와 같은 조언은 수많은 책과 논문, 강연에 단골로 등장하며 이미 상식으로 굳어졌다. 필자 역시 '위기관리 10계명'과 같은 지침을 강의나 자문을 통해 널리 소개해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막상 일이 닥치면 그 모든 매뉴얼과 노하우가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고, 조직은 내부적으로 갈등에 휩싸인다. 기자들이 몰려들고 여론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고 사방에서 문의가 쏟아지는 등 어수선해지지만, 대응 방향을 잡기는커녕 상황 파악조차 쉽지 않다. 조언은 넘쳐나지만, 제대로 된 정보는 부족하다.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누구나 교통사고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막상 교통사고가 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실수를 연발하고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기 마련이다.


김왕기 저자는 위기관리의 본질이 결국 '사람'의 문제이며, 태도의 문제라고 말한다. 따라서 '기술'이나 '노하우'가 아니라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과 접근 방식, 마음가짐과 행동, 준비의 중요성 등을 강조한다. 위기를 보는 시선과 대응의 변화, 즉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돕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다.


저자는 '4장 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에서 이렇게 방안을 제시한다.


홍보, 법무, 인사 등 관련 부서의 직원 중 소통 능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인재를 뽑아 위기관리 책임자로 지정할 수 있다. 물론 수준 높은 전문가이면 좋겠지만, 최소한의 소양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충분하다. 이 사람이 예를 들어 한국PR협회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 회사의 워크숍 등에 참가하도록 회사 차원에서 지원함으로써 내부 전문가를 육성하면 된다. 이 담당자가 기본적인 위기 대응 매뉴얼을 만들게 하고, 정기적인 사내 교육과 훈련을 통해 전 직원의 위기 인식 수준을 높이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내부에서 육성된 담당자는 위기 발생 시에 가장 빛을 발한다. 외부 컨설턴트나 에이전시보다 내부 조직의 문화와 상황, 인력과 맥락에 대한 이해도가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위기 상황이 되면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내부 전문가가 정확하고 신속하게 정보를 전달하고, 외부의 조언을 조직 상황에 맞게 적용함으로써 훨씬 더 비용 효율적이고 신속한 위기관리가 가능해진다.


이 책은 언론과 정부기관을 거쳐 금융기관과 로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력을 지닌 김왕기 저자가 현장에서 보고, 듣고, 부딪힌 경험을 담아낸 살아있는 기록이자 실전 지침서이다. 위기관리, 특히 평판관리의 전문가인 저자는 위기관리가 단순한 법률 대응이 아니라, 그 이전 단계인 '평판관리'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특히 징후를 읽는 법, 리더와 조직이 지녀야 할 덕목과 태도에 관한 통찰이 돋보인다.


위기 대응에는 하나의 정답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조직의 리더나 고위층, 위기에 노출되기 쉬운 개인과 기업은 무엇보다 먼저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고, 변화에 대한 경각심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인식이 바뀌면 대응이 달라지고, 대응이 달라지면 결과 역시 크게 바뀔 수 있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더욱 명료한 인식과 준비된 자세를 갖추고, 그 위협과 불안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 지은이_김왕기


언론계, 행정부, 금융기관을 거쳐 현재는 국내 대표 로펌에서 평판위기 자문 업무를 수행하면서 수많은 사건과 위기 상황을 경험했다. 이 다층적인 경로를 통해 평판위기의 유형과 대응 방식, 사람들의 인식과 반응 그리고 그 한계와 오류를 깊이 있게 체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개인, 기업, 기관 등을 대상으로 전문적이고 실용적인 위기관리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언론계에 입문해 30여 년간 주로 중앙일보 경제·산업·금융 분야의 기자, 논설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해왔다. 그 후 국무총리 공보실장으로 정부 안팎의 소통 업무를 담당했으며, KB금융지주 부사장 시절에는 그룹 차원의 통합 커뮤니케이션 및 위기관리 업무를 총괄했다.


감사원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 등 각종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사회적 갈등 조정에 참여했고, 총리실 재직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국가 위기 상황에서 당정청(黨政靑) 고위급 TFT의 위기 수습에 참여했다. 국무총리 해외 순방 시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UN총회, 다보스(Davos) 포럼, OECD 이사회 등의 외교 현장과 UAE 원전(原電) 수주 활동에도 실무 기여를 했다.


현재 법무법인 (유)율촌에서 평판위기에 관한 원스톱 자문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 겸임교수 등으로 후학 양성에도 힘썼고, 청년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인 'KB 굿잡'과 KB금융 공익재단 설립을 기획, 추진해 사회적 가치 실현에 기여했으며,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뉴스취재와 기사쓰기》, 《한국 경제 설 땅이 없다》(공저), 《실록 6공경제》(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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