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수현 전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고 국민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 추진이 필수적이다. 보편적 기본소득, 디지털 뉴딜과 같은 담대한 국가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지만, 증세나 전통적인 국채 발행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 시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금융 혁신에 시선이 모인다. 한때 암호화폐 시장의 부산물 정도로 여겨졌던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은 국가의 재정적 한계를 돌파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강력한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정책의 가장 큰 제약은 언제나 '재원'이었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의 메커니즘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그 준비자산의 대부분은 미국 국채로 채워지고 있다. 이는 전 세계의 디지털 자본이 미국 정부의 재정 운용을 위한 안정적인 수요 기반이 되어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구조를 우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성화하고, 그 준비자산을 국채로 운용하도록 제도화한다면, 우리는 국가 정책을 위한 '마르지 않는 재정의 샘'을 확보하게 된다. 특히 지금처럼 고금리와 경기 불확실성으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한계 상황에 내몰릴 때, 정부의 확장 재정 능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제공하는 거대한 국채 매입 수요는, 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경기부양, 사회안전망 확충에 필요한 재원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는 핵심 통로가 된다. 이는 민간의 고통을 덜고 경제 연착륙을 유도하는 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순기능이다.
이러한 안정적 재원 확보가 스테이블코인의 첫 번째 효용이라면, 두 번째 효용은 경제 전체의 유동성을 증폭시키는 데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돈의 핵심 기능인 '거래의 매개'와 '가치 저장' 수단으로 기능하지만,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통화나 은행의 예금통화가 아니기에 M1, M2와 같은 공식 통화량(Money Supply) 지표에는 포착되지 않는다.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을 뿐, 경제 전체에 미치는 실질적인 효과는 완전히 다르다.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은 경제 내 총구매력을 사실상 이중으로 창출하는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1억 원의 자금으로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하면, 그 1억 원은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정부 재원으로 시중에 풀린다.동시에, 구매자의 디지털 지갑에 생성된 1억 원 가치의 스테이블코인 역시 독립적인 구매력을 가지고 소비와 투자에 사용된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자금으로 '전통 금융 시스템을 통한 구매력'과 '디지털 자산 시스템을 통한 구매력'이 동시에 창출되는 것이다. 통계상 돈의 양은 그대로지만, 경제를 순환하는 돈의 총량과 속도는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이는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강력한 유동성 공급 효과를 가지며,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기부양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물론 이러한 강력한 효과는 새로운 정책적 과제를 동반한다.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은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 영향력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유동성 긴축에 나서도, 디지털 자산 시장의 수요에 의해 움직이는 스테이블코인의 유통은 크게 위축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켜 정책 당국에 새로운 딜레마를 안겨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통제 불가능한 위협이라기보다, 새로운 금융 환경에 맞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혁신적인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국가의 재정 능력을 극대화하고 실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잠재력만은 명확하다. 안정적인 재원 확보를 통해 정부는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고, 실질 구매력 증대를 통해 국민은 그 효과를 피부로 체감하게 될 것이다. 물론 투명한 감독과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은 반드시 필요하다. 통화정책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과거 무분별한 통화발행으로 인해 위기를 겪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시대가 주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디지털 금융의 날개를 달고, 대전환의 시대를 선도하며 국가 발전의 새로운 길을 열어젖힐 때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