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박규빈 기자

▲산업부 박규빈 기자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일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결과는 끔직하게 나올 수 있다는 뜻이 담긴 서양 속담이다.
한국 증시의 고질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를 치료하겠다며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두 번째 처방전을 내놨다. 대통령의 국정 과제인 '5000피' 달성을 위해 낮은 주주 환원율과 불투명한 지배 구조라는 병폐를 해소하기 위해 대규모 상장회사의 집중 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최소 인원 1명에서 2명으로 확대라는 강력한 약을 더 쓰겠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7월 3일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확대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실효성 보완 △3%룰 강화 △전자 주주총회·전자 투표제 의무화 △0.5% 이상 주주에 감사위원 후보 추천권 부여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는 1차 상법 개정안이 민주당의 주도로 원안 가결됐다.
거여(巨與)의 독주 속에 통과된 상법 개정안들은 기업을 옥죄어 단기적 주주 이익을 짜내는 것이 곧 기업 가치 제고라는 위험한 착각에서 비롯된 입법 과잉이자 정책 실패로 귀결될 것이다. 이사회는 전쟁터가 되고 경영진은 소송 공포에 시달리며, 한국 시장은 예측 불가능한 '규제 섬'으로 고립될 것이다.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본래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한국 기업들을 투기 자본의 놀이터로 전락시키고 장기 성장 동력을 파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시장의 불신은 지배구조 문제 외에도 지정학적 리스크와 규제의 불합리성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다. 그런데도 일련의 상법 개정안은 기업 경영의 안정성을 파괴해 시장의 불안정성을 오히려 키우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병을 고치겠다며 병의 원인을 악화시키는 모순이다.
개정안 지지자들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지만 이는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한 것이다. 1차 상법 개정안의 핵심 조항들 중 특히 감사위원 선임 시 '3%룰'과 같은 의결권 제한은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 선진국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다. 이는 한국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미국은 엔론 사태 이후 사베인스-옥슬리법(SOX)을 통해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대폭 강화했지만 이는 경영진으로부터의 '재정적·인적 독립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 주주 총회에서 특정 주주의 의결권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방식이 아니다. 독일의 이원적 지배 구조나 일본의 감사등위원회설치회사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는 주주 평등의 원칙이라는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조치다.
이것이 바로 '선무당'식 입법의 전형이다. 해외 제도를 도입한다며 각국이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균형과 견제의 시스템은 무시한 채 가장 공격적인 규제들만 입맛에 맞게 짜깁기했다. 미국에는 강력한 주주 소송권이 있지만 동시에 경영자의 선의의 판단을 보호하는 '경영 판단 원칙'이 확립돼 있고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의 상법 개정 세력은 공격용 무기만 잔뜩 쥐여주고 방패는 주지 않는 불공정한 게임을 강요하고 있다.
모든 경영 판단은 소송 리스크를 피하는 방향으로 극도로 보수화 될 수밖에 없다. 인수·합병(M&A)·대규모 설비 투자 등 기업의 미래를 위한 과감한 결단은 위축되고, 혁신에 쓰여야 할 에너지는 소송 방어를 위한 문서 작업과 법률 검토에 소모될 것이다. 기업의 가치는 주주권 강화라는 구호만으로 오르지 않는다. 기업의 본질인 성장 가능성과 매출, 영업이익 등 기초 체력이 튼튼해야 오르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바로 그 펀더멘털을 훼손하는 자해 행위다.
지금이라도 이 위험한 실험을 멈춰야 한다. 진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싶다면 소수 주주권 강화와 함께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영권 방어 수단을 균형 있게 도입하고,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저해하는 배임죄 규정 등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진짜 전문가'의 처방이 필요하다. 선무당에게 계속 칼을 맡겨둘 수는 없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걸린 문제에 대해 국회의 신중한 재고와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