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명 사망’ 무안 참사…제주항공, 책임 공방 ‘태풍의 눈’
성장 독려 속 터지는 화재…삼성SDI, ‘안전 리스크’ 시험대
‘배회 영업’ 수수료까지…카카오모빌리티, 공정성 시험대
철도차량 납품 담합 다원시스·현대로템 ‘병든 공생’ 추궁
오는 10월 열리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는 단순한 연례행사를 넘어 공공 안전과 시장 질서, 국가 기간산업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현안들이 공론화 될 전망이다.
제주항공·삼성SDI·카카오모빌리티·다원시스·현대로템의 최고 경영자(CEO)들이 증인으로 줄줄이 소환되고 이들의 증언에 따라 각 기업이 여론의 도마에 오를뿐 아니라 관련 산업의 규제 환경과 정책 방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국토위는 10월 13일부터 29일까지 피감 기관들과 일반증인 26인과 참고인 5인에 대한 국감을 진행할 예정이다. 특히, 올해 국감장에는 제주항공·삼성SDI·카카오모빌리티·다원시스·현대로템 등 각 회사 대표이사들이 나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위 국감은 표면적으로는 개별 기업의 문제점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형 참사 이후의 기업 책임과 사회적 신뢰 회복(제주항공) △첨단 기술의 안전성 확보와 글로벌 경쟁력 유지(삼성SDI) △플랫폼 독점의 공정성 문제와 규제 공백(카카오모빌리티) △공공 조달 시스템의 부실과 공급망 붕괴(다원시스·현대로템)라는 구조적 과제들을 짚을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진행 중인 무안공항 참사 책임 소재 시시비비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이사(사장)이 1차 브리핑 후 이동하는 모습. 사진=박규빈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태국 방콕을 출발해 181명을 태운 제주항공 2216편이 무안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활주로 외벽과 충돌 후 화재가 발생, 탑승자 179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사고 초기에 한 탑승객이 보낸 메시지를 근거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한 엔진 고장이 유력한 원인으로 추정됐다. 김이배 대표는 사고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정부의 원인 규명에 대한 전적인 협조 및 유가족 지원을 약속하며 신속한 위기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참사의 규모가 워낙 큰 만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공식 조사에 착수하고 경찰이 김 대표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하는 등 사태는 단순 사고를 넘어섰다. 유가족들은 사고 기종인 보잉 737-800의 퇴역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공개적인 시위를 벌이는 등 사측의 대응과 별개로 진상 규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한편 사고의 근본 원인이 항공사가 아니라 무안공항의 짧은 활주로 양단에 위치한 콘크리트 구조물 등 공항의 물리적 설계 결함이 사고를 유발했거나 피해를 키웠다는 구조적 문제에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이는 김 대표의 책임을 일부 분산시킬 수 있는 방어 논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국감의 칼날을 공항 건설과 관리를 감독하는 국토교통부로 향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국감은 제주항공에 대한 책임 추궁을 넘어 대한민국 항공 안전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삼성SDI, 꺼지지 않는 배터리 화재 논란

▲삼성SDI 배터리발 현대제철 인천 공장 화재 현장. 사진=인천소방본부 제공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는 리튬 배터리 화재 사고 관련 현안 질의에 관해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발생한 에너지 저장 장치(ESS) 화재 39건 중 15건이 삼성SDI 제품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SDI는 현재 미국에서도 다수의 제품 책임 소송에 직면해 있다.
국내외에서 제기된 안전성 논란은 최 대표가 임직원들에게 '배터리 슈퍼 사이클'의 도래를 역설하며 성장을 독려하는 내부 메시지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최 대표의 국감 출석은 삼성SDI가 직면한 '성장 지향적 내부 비전과 외부의 안전성 리스크 사이의 전략적 부조화'와 '화재 사고의 성격을 둘러싼 '개별 사고' 대 '시스템 결함'의 프레임 전쟁 등 두 가지 딜레마를 공론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개별적인 제조상의 결함인지, 배터리 셀 설계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인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고 해외 시장에 수출되는 제품과 내수용 제품 간에 안전 및 품질 관리 기준에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질의가 예상된다.
울러 국토위원들은 연구·개발(R&D) 예산이 에너지 밀도 향상이나 원가 절감에 비해 '안전성 강화'에 얼마나 투입되고 있는지 집중 추궁하며 기업의 경영 우선 순위를 검증할 수도 있다.
독점적 지위·불공정, 그리고 알고리즘 권력…공정의 시험대에 오른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모빌리티가 공개한 자사 택시 콜 알고리즘. 자료=카카오모빌리티 제공
국토위는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를 택시업계 독과점 등과 대중교통 혁신 의혹 회복 방안 마련 등 포괄적인 사유로 국감 증인으로 세울 예정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현재 알고리즘 조작 논란과 부당 수수료 징수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사의 모든 사업 방식이 '이용자 편의 증진'에 기여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가맹 택시를 우대하는 알고리즘 역시 배차 성공률을 높여 결국 승객에게 이익이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플랫폼과 무관한 '배회 영업'에까지 수수료를 부과한 사례는 이러한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길에서 직접 태운 승객에게서 발생한 매출에 수수료를 매기는 행위는 소비자에게 어떠한 추가적인 편익도 제공하지 않는, 순수하게 택시 기사로부터 가치를 이전받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카카오모빌리티가 공적이고 법적으로 내세워 온 가장 강력한 방어막을 허무는 결정적인 균열이 될 수 있어 국토위원들은 바로 이 지점을 집요하게 공격할 수 있다.
다원시스·현대로템발 담합과 부실, 붕괴된 철도 공급망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박선순 다원시스 대표이사. 사진=각 사 제공
박선순 다원시스 대표이사는 철도 차량 제작·납품 지연, 이용배 현대로템 사장은 철도 차량 입찰 담합 문제로 국감 증인석에 선다.
표면적으로는 별개의 사안처럼 보이지만 두 CEO의 소환은 국내 철도 산업을 지배해 온 담합 카르텔의 실상과 그로 인해 파생된 공급망 붕괴라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를 동시에 드러낸다. 이는 개별 기업의 비리를 넘어 국가 기간 산업의 조달·감독 시스템 전체가 실패했음을 시사한다.
국토위는 두 CEO를 한자리에 세워 담합과 부실의 연결 고리를 파고들 전망이다. 가장 폭발력 있는 질문은 박 대표에게 향할 사라진 588억원의 행방이 될 것이다. 선급금의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명확히 밝히라는 집중 압박을 받게 될 것인 만큼 불성실한 답변은 즉각적인 형사 고발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로템의 경우 리니언시의 윤리성에 관해 담합을 주도한 회사가 법 제도를 이용해 금전적 처벌을 완전히 회피한 결과의 부당함이 거론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대로템은 법의 제재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을 면키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