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은 AI 경쟁에 핵심…전기요금 인하에도 필수”
내무부, 서울 면적 88배에 달하는 연방토지 개방
에너지부 “석탄에 8700억원 지원”
EPA “환경규제 완화”…청정대기법 개정 추진
발전 단가 여전히 높은 석탄…“美 인플레 심화” 우려도

▲지난 23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침체한 석탄 산업 부활을 위한 본격 드라이브에 나섰다. 석탄 생산을 확대해 에너지 비용을 낮추고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제조업과 인공지능(AI) 등의 산업에서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국가는 망할 것이라며 “아름답고 깨끗한" 석탄 등 전통 에너지로 돌아가야 국가가 위대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 내무부는 석탄 채굴 등을 위해 연방 토지 1310만 에이커(약 5만3013㎢)를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서울 면적(605㎢)의 약 88배에 달하는 규모다. 연방 토지 내 석탄 채굴은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출범한 2021년 1월 이후 중단된 바 있다.
내무부는 또한 석탄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연방 토지에서 석탄 채굴 사용료(로열티)를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7월 발효된 미국의 감세법의 일환으로, 연방 토지에서 석탄 채굴 시 적용되는 사용료율을 기존 12.5%에서 7%로 인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그 버검 미 내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석탄 산업은 그동안 역량을 제한하려는 공격을 받아왔다"며 “미국이 계속 선두를 지키고 모든 국민이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두가 '드릴 베이비 드릴'(석유 시추 확대)을 외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를 위한 새로운 계획, 즉 '마인 베이비 마인'(석탄 채굴 확대)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미 에너지부는 석탄발전소 재가동과 현대화, 신규 석탄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6억2500만달러(약 870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아름답고 깨끗한 석탄은 미국의 재산업화를 촉진하고 AI 경쟁에서 승리하는 핵심"이라며 “이번 자금 지원은 석탄발전소 운영 지속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전기요금 인하와 안정적 전력 공급에도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석탄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산업 엔진을 만들어냈고,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통해 다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환경보호청(EPA)도 이에 발맞춰 석탄 산업의 성장을 제약해온 각종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석탄발전소의 폐수배출기준(ELG)과 관련해 기존의 이행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이날 공개했다. 시행될 경우 석탄발전소들은 오염 저감 조치를 완료하는 시점을 늦출 수 있어 에너지 공급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EPA는 설명했다.
EPA는 또 대기오염물질 감축을 의무화하는 '청정대기법' 개정과 관련해 60일간의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미국의 한 석탄발전소(사진=AP/연합)
◇ 트럼프 “석탄을 핵심 자원으로"…구조적 한계 여전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석탄산업 부활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월 서명한 행정명령의 후속 조치라고 AP통신은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즉시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석탄 생산을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4월엔 국가 및 경제 안보 차원에서 석탄을 핵심 자원으로 규정하고 석탄 채굴 확대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지난 23일 유엔총회에서 “강한 국경과 전통 에너지원이 있어야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며 “녹색 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세계 각국의 동참을 권고하기도 했다.
다만 미국 정부의 친화석연료 기조가 침체한 석탄 산업의 구조적 하락세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석탄발전은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 등 대체 발전원과의 경쟁에서 이미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라자드가 지난 6월 발표한 연례 '18차 LCOE(균등화발전비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미국 석탄발전의 LCOE는 1MWh(메가와트시)당 122달러로 분석됐다. 이는 태양광(58달러), 육상풍력(61달러), 복합 사이클 가스 터빈(78달러), 지열(88달러) 등 보다 훨씬 높다.
2010년까지만 해도 육상풍력(124달러)과 태양광(248달러)의 발전 단가는 석탄(111달러)보다 높았지만, 기술 발전으로 재생에너지 비용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석탄발전 비중은 꾸준히 감소했다.

▲2007년~2024년 각 발전원별 미국 발전비중 추이(사진=스태티스타)
◇ 치솟는 美 전기료…정치적 리스크 가능성도
실제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석탄발전 비중은 2000년에 절반을 차지했지만 지난해 15%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작년 천연가스의 발전비중이 43%로 집계됐고 재생에너지(24%), 원자력발전(18%)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 총 27기가와트(GW) 규모의 석탄발전소가 2028년까지 폐쇄 예정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힘입어 석탄발전 비중이 반등하더라도 이는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석탄발전 비중 확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으로 올해 미국 전기료가 크게 치솟는 와중에 석탄발전 확대가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전기료는 전년 동월 대비 6.2% 올라 올해 들어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인 1월의 상승률보다 4.9%포인트 높은 수치다.
미국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의 홀리 벤더는 “노후화되고 낡은 석탄 산업을 지탱하기 위해 오늘(29일)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무모한 행동은 미국 국민에 타격을 줄 것"이라며 “석탄 발전은 가장 더러운 발전원뿐만 아니라 가장 비싸기 때문에 미국인의 에너지 요금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