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李대통령發 ‘더 더 센 상법’…與, 11월 정기국회 처리 방침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한국경제설명회 투자서밋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3 조기 대선으로 임기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 정책·공약 실현이 본격화하고 있다. '잼코노미'는 '잼(이재명 대통령의 별칭)'과 'Economy(경제)'를 합친 말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하거나 이슈화한 경제 현안을 중심으로 주요 정책과 시장 변화를 분석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뉴욕 유엔총회 현장에서 “기업의 불합리한 의사결정 구조를 합리적으로 바꾸겠다"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포함한 '3차 상법 개정' 추진 의지를 못 박았다. 여당은 곧바로 호응하며 '자사주 원칙적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더 더 센 상법' 처리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해 “배당이 더 많이 이뤄지게 하거나 자사주를 취득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남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3차 상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두 번에 걸쳐 상법을 개정했는데 기업의 불합리한 의사 결정 구조를 합리적으로 바꿀 것"이라며 “3차 상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는데 저항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기업에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오는 11월 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자사주는 기업이 발행한 주식을 다시 매입해 보유하는 주식으로, 의결권과 배당권은 없다. 2011년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취득과 처분이 전면 자유화된 뒤 많은 기업이 자사주를 쌓아왔다.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상장사 1666곳, 전체의 73.6%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기업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져 국내 증시 상승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를 말 그대로 없애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면 발행(유통) 주식 수가 감소해 주당순이익(EPS·당기순이익을 주식 수로 나눈 값)이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주가 상승으로 직결된다는 논리다.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주주환원 차원에서 자사주를 적극적으로 매입해 소각한다. 애플은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전체 주식의 약 39%에 해당하는 100억 주 이상을 소각했다. 그 과정에서 주가는 10배 넘게 뛰었으며 주당순이익(EPS)도 연평균 15.7% 성장했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약 1조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자 테슬라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비록 소각은 아니었지만,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보는 시각이 크지 않은 미국에서는 매입만으로도 시장이 환호하는 분위기다.

▲15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장 이날 3,400을 돌파한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국내 기업 전반의 자사주 소각률은 여전히 낮다. 리더스인덱스가 2022~2024년 2265개 상장사의 자사주 보유 및 소각 현황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자사주를 보유한 상장사 1666곳 중 소각에 나선 기업은 142곳(8.5%)에 불과했다. 정부와 여당이 '강력한' 상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주환원보다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자사주를 활용한다는 불신이 뿌리 깊다.
실제로 태광산업은 지난 6월 발행주식의 24.41%에 해당하는 자사주 전량(27만1769주)을 담보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하려다 주주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보류했다. 재무 상태가 양호한 상황에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EB 발행에 나서려 한 것이 대주주 지배력 강화를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자초한 것이다. 자사주 담보 EB 발행은 사실상 3자 배정 유상증자와 같은 효과를 내 기존 주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오기형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과 함께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의원들은 앞다퉈 개정안을 내놨다. 쟁점은 기업의 자사주 취득 후 '소각 기간'이다. 김남근 의원안은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취득 후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하고, 예외적 보유 시 주총 승인을 거치되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했다. 민병덕 의원안은 전체 주식의 3% 미만 취득 시 소각 기한을 2년까지 허용했다. 김현정 의원은 '최대 3년'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해 정부 재량을 존중하는 안을 발의했다. 차규근 의원은 '취득 6개월 이내 소각'을 명시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은 신규로 취득한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하되,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임직원 보상이나 우리사주조합·사내복지기금 출연 등은 대통령령으로 예외를 인정키로 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취득한 자사주의 수량·목적·처분 계획을 공시하도록 하거나(김현정 의원안),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김남근 의원안) 규정했다. 문대림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한국거래소 열린 간담회 후 “자사주 과다 보유 문제를 논의했으며, 종업원 보상 목적을 제외한 불필요한 자사주는 소각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기업을 경영권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에는 차등의결권이나 황금주 같은 방어 장치가 부족해 외부 세력의 위협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SK는 소버린의 공격을 받았을 때 보유 자사주 10.41%를 하나은행·신한은행 등에 매각해 우호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삼성물산도 엘리엇과의 경영권 분쟁 당시 자사주 5.76%를 KCC에 넘겨 방어에 성공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