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철 금속 거목 잠들다…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84세 일기로 별세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10.06 17:19

도전으로 일군 ‘세계 제련업계의 거인’
“혁신보다 변화”… 사람 중심 정도경영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 제공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 제공

자원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고려아연을 세계 1위 비철 금속 제련 기업으로 키워낸 최창걸 명예회장이 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고려아연에 따르면 최 명예회장은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으며, 임종은 부인 유중근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아들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가족이 지켰다. 장례는 7일부터 4일간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고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에 열릴 예정이다.


고인은 한국 비철금속 산업의 역사를 개척하고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1974년 창립부터 회사에 몸담아 불과 30여 년 만에 100년 역사의 경쟁사들을 뛰어넘는 신화를 일궈냈다.



1941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 명예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1973년 한국으로 돌아와 8개월 남짓 지났을 무렵,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에 따라 고려아연이 설립되면서 그의 위대한 도전이 시작됐다.


기술도, 자금도, 경험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는 자금 확보를 위해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의 문을 두드렸다. IFC는 사업비로 7000만 달러를 예상했지만 그는 5000만 달러에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나아가 높은 마진을 요구하는 해외 건설사의 턴키 방식 대신 직접 공사를 총괄하는 '신의 한 수'를 뒀다. 이 결정은 IFC의 예상을 뒤엎고 4,500만 달러라는 비용으로 공장을 완공하는 결과로 이어졌을 뿐 아니라, 회사 내부에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기틀이 됐다.




그의 도전 정신은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설비 투자로 이어졌다. 1980년부터 12년간 사장과 부회장으로 재임하며 △기술 연구소 설립 △생산 시설 확장 △기업 공개(IPO) 등을 추진해 회사의 기틀을 다졌다. 1992년 회장에 취임한 이후에는 '원칙에 충실하자'는 신조 아래 아연 및 연 제련 공장을 증설하고 호주에 아연제련소(SMC)를 설립하며 글로벌 사업 기반을 넓혔다.


특히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연 잔재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하는 기술을 상용화해 전 세계 제련소들의 숙원을 해결하며 고려아연을 세계적인 친환경 기업으로 발돋움시켰다.


“나는 혁신이나 개혁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 한꺼번에 큰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


최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은 '하루하루의 꾸준함과 성실함'에 기반했다. 그는 기업의 성장이 멈추는 것을 죽음과 같다고 여기며 끊임없는 변화를 강조했다.


그의 경영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려아연은 특정 가문이 아닌 임직원 모두의 회사"라고 생각했으며, 직원들을 동료를 넘어 가족처럼 여겼다. IMF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구조조정 없이 임직원들의 고용을 지켰고, 이는 38년 무분규와 102분기 연속 흑자라는 대기록의 밑바탕이 됐다.


이러한 경영 철학 덕분에 고려아연의 아연 생산 능력은 연 5만 톤에서 65만 톤으로, 매출액은 114억 원에서 12조원 수준으로 성장했고 시가총액은 한때 20조 원에 육박했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린 사회공헌

최 명예회장의 나눔 철학은 부친인 고(故) 최기호 초대 회장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머리에 든 재산은 절대 잃지 않는다"는 선대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그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시혜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데 힘썼다.


1981년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수많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으며, '임직원 1% 급여 기부 운동' 등을 통해 나눔 문화를 사내에 정착시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고, 부인 유중근 이사장, 아들 최윤범 회장과 함께 '아너 소사이어티 패밀리'에 이름을 올렸다.


3세 경영 시대, 아버지의 길을 잇다

최 명예회장의 장남인 최윤범 회장은 2022년 말 취임하며 '3세 경영' 시대를 본격화했다. 그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부친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10년 가까이 국내외 현장을 누볐다.


최윤범 회장 체제 아래 고려아연은 신재생 에너지·그린 수소·2차 전지 소재·자원 순환 사업을 '트로이카 드라이브'로 명명하고 미래 50년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미-중 갈등 속에서 핵심 광물 '탈중국 공급망'의 허브로 부상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박규빈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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