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도 보호주의 관세 강화…K-철강 ‘수출전선’ 험난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10.13 08:38

무관세 쿼터 47% 축소, 관세 50%로 상향 입법 예고
사실상 ‘탄소세’ CBAM도 부담 큰데 쿼터 축소 더해
‘고부가 중심’ 韓, 양대 철강 수출시장서 경쟁력 우려
“해법은 저탄소·고부가”…정부 기존물량 유지 총력

여한구-셰프초비치 면담

▲10일 (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그케베르하에서 열린 G20 무역투자장관회의에서 마로시 셰프초비치(왼쪽) 유럽연합(EU) 통상·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면담하고 있다. 사진=마로시 셰프초비치 엑스 계정

유럽 철강시장의 무역 장벽이 미국처럼 높아질 것이라는 예고가 나오면서 한국 철강사들이 긴장하고 있다. 보호무역 기조에서 숨통을 터줬던 무관세 수입 할당량(쿼터)을 줄이면 유럽에서 가격 경쟁력 약화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철강제품 탄소 배출량에 따른 비용 부담도 내년부터 시작돼 철강사들은 '이중고'를 맞이했다. 이에 기업별로 저탄소 친환경과 기술 경쟁력을 내세워야 유럽 철강시장 보호무역 장벽을 넘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국가·강종별 쿼터 등을 담은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 조치를 대체해 최근 내놓은 저율관세할당물량(TRQ) 도입 계획의 입법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새 계획은 쿼터 물량을 현재 대비 47% 줄이고 쿼터 밖 관세율을 25%에서 50%로 높이는 내용을 담았다. 철강재 제조 과정에서 쇳물을 어디서 부었는지부터 살펴보는 '조강국 모니터링' 도입도 포함했다. 현재 내년 6월 몫까지 쿼터가 배정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7월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철강사들은 무관세 쿼터 규모 변화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은 분기별로 할당된 무관세 쿼터를 활용해 EU 시장에 철강 제품을 수출해왔다. 한국은 열연강판 등 품목별로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2분기까지 총 266만여t의 무관세 쿼터를 할당받았다. 국가별로 할당되지 않았거나 남은 쿼터를 선착순으로 적용받은 품목까지 포함해 한국은 EU에 철강제품 약 380만t 전부 무관세로 수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철강제품 쿼터제에도 EU는 한국 철강사의 주요 수출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이 EU에 19억992만달러어치의 철강제품을 수출했다. 전체 수출의 12.2%를 차지해 20억달러 넘게 수출한 미국을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44억8012만달러를 수출해 미국을 넘어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발표가 일종의 탄소세를 부과하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 더해져 철강업계는 '겹악재'를 우려하고 있다. CBAM은 철강을 포함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품목에 대해 수입품에도 EU 역내 생산과 같은 수준으로 탄소 배출 규제를 적용하는 제도다. 한국에서 철강제품을 생산하며 배출한 탄소의 양을 수입 업자에 제공하고, 수입 업자가 탄소 배출량에 따라 인증서를 구매하는 구조다. CBAM의 영향을 피하려면 수소환원제철 공정을 도입해야 하지만, 빨라야 2030년 이후 상용화될 것으로 예상돼 비용 부담을 피하기 어렵다.


자동차용 강판 같이 탄소 배출이 상대적으로 많은 고부가가치 품목이 한국의 대(對)EU 주력 수출품이라 부담이 더 크다. 특히 한국은 판재 기준으로 EU의 1위 수입국이다. 유럽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주요 국가들 중 가장 많은 320만t의 판재를 EU에 수출했다. 전체 철강 완제품 수출량 가운데 97.1%를 차지했다. EU 권역에는 현대자동차 체코 공장을 비롯해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차 생산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현지 부품업체들도 함께 완성차 공급망을 이룬다.


조강국 모니터링에 대응해 기업 차원에서 현지 생산 같은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철강사들이 EU 권역에서는 쇳물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일관제철소 건립 계획을 가시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폴란드에, 현대제철은 체코와 슬로바키아에서 철강재를 가공하고 있다. 하지만 쇳물 공정은 없다. 현대제철이 주요 수출국인 미국을 겨냥해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세우거나, 포스코그룹이 인도서 JSW와 손잡고 일관제철소 건립을 하는 것과 같은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0일 (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철강 공급과잉에 관한 글로벌 포럼(GFSEC)' 장관급 회의를 계기로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통상·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과 면담하며 “한국은 14년차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파트너로서 비(非)FTA 국가와는 차별화된 고려가 필요하다"며 “기존 교역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물량 배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EU 철강 시장의 무역 장벽은 무관세 쿼터 유지 뿐만 아니라 철강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제고까지 이뤄져야 극복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EU가 역내 철강제품 공급 과잉을 해결하겠다는 취지를 내세워 쿼터 축소 자체를 피하기 쉽지 않다. 결국 저탄소 철강재 개발과 양산으로 CBAM 부담과 관세 장벽을 같이 넘어야 한다. 정부는 이달 중 관계 부처 합동으로 글로벌 공급과잉과 불공정 수입 대응책, 철강산업 저탄소·고부가 전환 지원 등을 담은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재윤 산업연구원 탄소중립산업전환연구실장은 “한국이 EU에 탄소 집약적 철강제품 중심으로 수출해온 구조를 고려하면, 한국 철강사들은 EU 시장에서 CBAM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던 터에 새로운 세이프가드 조치가 추가 제약요건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근본적으로는 한국산 철강제품의 탄소 배출량을 줄여 EU 통상 이슈를 해결해야 한다"며 “저탄소 친환경 경쟁력을 갖추면 TRQ가 있어도 EU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울 여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승현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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