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조선 견제’ 中 후판 수출 제한 가능성 ‘촉각’
현실화하면 중국발 저가 물량 시름 해소할 기회
희토류와 반대로 저가 수출 늘리면 더 큰 부담
“철강-조선 소재 공급망 협력 모색해야 위기 극복”

▲중국 충칭 창서우에 위치한 충칭 제철소에서 한 근로자가 철판 롤 사이에서 이동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이 한국 조선업계에 던진 견제구를 철강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희토류 수출 제한 정책과 맞물려 조선사들의 의존도가 높은 중국산 후판(두께 6mm 이상 철판)에 대한 수출 제한이 다음 카드가 될 가능성 때문이다.
중국산 후판이 국내에 저가로 과잉 공급돼온 문제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지만, 중소 조선사들의 원가 상승 부담이 철강사들에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중국산 후판 조달이 어려워질 상황에 대비해 철강산업과 조선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한화 필리조선소를 비롯해 한화그룹의 미 현지 조선·해운 계열사를 겨냥한 제재 조치로 한국과 미국 간 조선업 협력을 본격적으로 견제하는 움직임이다. 그간 중국은 미중 간 해양 패권경쟁이 심화하는 과정에서 한미가 조선업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것에 관영매체 보도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왔다. 추가 조치가 나오진 않았지만, 조선사들은 제재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재 확대 방향 중 하나로는 공급망 견제가 지목된다. 선박 건조에 필요한 후판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사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선박 건조 능력을 갖춘 데다 대부분의 기자재와 재료를 국내에서 조달할 수 있지만, 선사들의 발주를 따내려면 가격 경쟁력까지 충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박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국내 철강사들의 후판이 필요하지만, 선박 구조와 성능, 미관 등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을 중심으로 중국산 후판을 적용하는 것이다.
중국산 후판 수출 제한이 현실화된다면 철강사들에게는 저가 물량 해소 기회가 된다. 후판이 국내에 저가로 과잉 공급돼있어 이를 해소해야 철강 시장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조선업 공급망 전반이 약해지며 철강사들에게도 수요 감소 영향이 미칠 수도 있다. 조선업계에 더해질 원가 부담이 저가 후판 의존도가 높은 중소 조선사와 기자재 업체로 먼저 전가되기 때문이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1~9월 중국에서 약 64만톤(t)의 중·후판을 들여왔다. 이는 전체 중·후판 수입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올 들어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가 중국산 열연 후판에 최대 38.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지만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국내 철강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다만 미중갈등이 심화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향후 제재 범위와 대상이 확대될 경우 국내 주요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돼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철강재 수출이 많이 위축된 데다 국내에 저가 철강재 물량이 쌓여 있어 철강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중국산 저가 후판의 국내 유입이 줄면 오히려 다행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재 공급망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중국이 과잉 물량 대응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이상을 맡는다는 점을 이용해 수출 통제에 나선 것과 달리, 철강은 자국의 가격 경쟁력을 이용해 다른 나라의 철강 산업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대중 무역제재를 내세운 2018년을 기점으로 중국발 과잉 공급이 글로벌 철강 시장의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철강 과잉공급 글로벌포럼(GFSEC)에서 영상을 통해 중국산 저가 철강재의 영향으로 다른 국가들의 철강재가 미국을 향한다며 “과잉 공급과 이게 일으키는 세계 시장 왜곡에 더 제대로 대응하려면 유사 입장국들의 비슷한 무역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수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안정적인 후판 공급망을 형성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을 주문했다.
손영욱 철강산업연구원 대표는 “수요자가 낮은 가격의 철강재를 선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현재 일부 후판 강종에 부과된 반덤핑 관세에 더해 품질 인증제도 같은 비관세 장벽을 세우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손 대표는 “한국 철강사들이 안정적인 공급과 납기 준수 같은 경쟁력을 기반으로 조선사와 파트너십을 강화해 마스가를 포함한 공급망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