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우 산업부장(부국장)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 “후진적 산업재해 공화국 반드시 벗어나야"(이재명 대통령), “산업재해 예방은 국가의 제1책무…범정부적 역량을 집중해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대통령과 주무장관의 강도 높은 비판과 해결 의지 발언에도 불구하고 산업현장에서 인명사상 재해사고가 멈추지 않고 있다.
바로 얼마 전인 지난 17일 KG스틸 인천공장에서 추락한 중량물에 맞은 하청업체 노동자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같은 날 한화오션 경남 거제사업장에서 철제 구조물 설치 작업 중 구조물이 넘어져 60대 노동자가 머리를 다쳐 병원에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앞서 지난 3일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철거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가 아래로 떨어져 추락사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대통령이 언급한 '후진적 산업재해 공화국'이라는 지적이 단순히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강조하려 수사적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산업재해 공화국'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최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건설업의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고사망자 수를 의미하는 통계지표)은 2023년 기준 1.59로 OECD 10대 경제권 평균(0.78)의 2배 이상이며,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건설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138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6.15% 더 늘어났다.
이같은 산업재해 발생 건수와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 3년 동안 사망자 수는 일부 줄었지만(2021년 683명→2023년 598명), 재해자 수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2021년 12만2713명→13만 6796명).
이런 현실은 우리나라의 산업안전 관리체계의 근본적 재설계라는 구조적 해법 수준을 못지 않게 산업현장 주체들의 안전인식도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업현장이 '위험'과 '익숙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비유하곤 한다.
즉, 산업현장의 위험은 언제, 어디서든 상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구조적, 제도적 대책들이 그동안 끊임없이 강구되고 구현돼 왔다.
그러나, 이같은 구조적, 제도적 대책의 실효성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산업현장의 익숙함이다. 익숙함에는 작업공사의 비용 효율화만 앞세운 불합리한 원하청거래, 산업안전 관리감독의 무사안일주의, 현장작업자의 안전수칙 경시문화 등이 다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앞의 두 가지 익숙함은 재해 사고 발생 시 원인과 책임을 물어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산업현장 종사자의 안전 불감증은 딱히 사회적 지탄은 받을지언정 법적 제재에서 벗어나 있는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산업현장 노동자들의 산업안전 인식은 '후진적'이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많은 노동자들이 안전수칙을 '형식적인 절차'로 인식하거나, '일의 속도'와 '성과'에 밀려 안전을 후순위로 두는 경향성을 강했다. 조사에서 약 40%의 노동자가 “작업 중 위험을 느껴도 보고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 35%는 “보호구 착용이 불편하거나 귀찮다"고 여기는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재해의 인과관계에서 정부의 감독 소홀, 기업의 안전조치 불이행은 즉각 제재와 개선의 효과로 이어지는 성격인 반면, 노동자의 안전 불감증은 개인의 인식 문제로 치부되면서 '산업안전 문화 정착'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아무리 산업재해 예방의 제도와 안전장비가 선진적일지라도 집행자나 수용자의 실제 운용이 선진적이지 않다면 '산업재해 후진국'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제도 선진화 못지 않게 인식의 선진화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