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 경영 위기 극복 차원 고금리 추가 발행 ‘급한불 처방’
일상 회복 뒤 ‘이자 폭탄’ 부메랑 역효과 ‘재무 부담 가중’ 악순환
티웨이, 부채비 4457%, 2년 뒤 3% 가산 금리로 ‘아슬아슬 비행’
제주항공, 1000억 수혈에도 연 6.5% 허덕…“부채 분류 시 1131%”
대한항공, 3000억 영구채로 시간 벌기…정부, 재무 건전성 심사 예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23년 5월 5일 3년 4개월 가량 이어졌던 '코로나19 팬데믹'의 종식을 선언했고, 이후 여객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항공업계가 외형적으로는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2년 반 가량 지난 현재 항공업계의 회복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생존을 위해 발행했던 '영구채(신종 자본 증권)'가 부메랑이 돼 돌아와 항공사들의 재무 건전성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
통상 영구채는 만기가 정해져 있지 않아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된다. 덕분에 항공사들은 급한 불을 끄면서 부채 비율을 낮추는 '합법적 분식 회계'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2~3년 뒤부터 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스텝 업(Step-up)' 조항이 달려있어 사실상 고금리 시한부 사채와 다름없다. 이제 '이자 폭탄'의 도화선에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저비용 항공사(LCC)들은 살인적인 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고금리 영구채를 추가 발행하는 악순환에 빠졌고, 국내 항공업계 맏형인 대한항공마저 아시아나항공 인수의 일환으로 수천억 원대의 영구채를 떠안으며 재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까지 현행 관리 체계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항공사 재무 모니터링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하는 연구 용역에 착수했다.
티웨이항공, 부채비율 4457%…900억 '폭탄 돌리기'
▲서울 강서구 공항동 김포국제공항 화물 청사 소재 티웨이항공 항공훈련센터 1층 로비의 항공기 모형과 간판. 사진=박규빈 기자
LCC들의 재무 상황은 그야말로 '시계 제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DART)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연결 재무제표 기준 티웨이항공의 자본 총계는 391억 원에 불과한 반면, 부채 총계는 1조7433억 원에 달한다. 회사 측은 부채 비율은 4457.26%라고 공시했다.
올해 3분기까지 2093억 원의 누적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악재로 작용한다. 이처럼 극도로 취약한 자본 기반은 작은 외부 충격에도 회사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타개하고자 티웨이항공은 '영구채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8월 21일 하루에만 400억 원 규모의 제3회 사모 영구 전환 사채와 500억원 상당의 제4회 사모 영구 신주 인수권부 사채를 발행해 총 900억 원의 자금을 수혈했다.
하지만 이는 '폭탄 돌리기'에 가까웠다. 두 채권 모두 최초 표면금리는 5.5%로 낮지 않고, 발행 2년 후인 2027년 8월부터는 최초 이자율에 연 3.0%의 가산 금리가 붙고, 이후 6개월마다 0.5%씩 추가 가산되는 파격적인 스텝업 조항을 달고 있다. 2년 내에 900억원을 상환하거나 더 나은 조건으로 차환하지 못하면 감당하기 힘든 이자 비용을 떠안아야 하는 '시한부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백기사' 하나증권 구한 제주항공, 금리는 6.5%
▲인천국제공항 에어 사이드에 주기된 제주항공 B737-800(HL8321). 사진=박규빈 기자
2025년 3분기 말 연결 기준 부채비율은 695%로 수치상으로는 티웨이항공보다 다소 양호해 보이지만 제주항공 역시 3분기까지 1295억 원에 달하는 누적 영업손실을 내 현금 흐름 압박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런 제주항공에 하나증권이 '백기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하나증권은 지난 7월 29일 1000억 원 규모의 사모 신종 자본 증권 발행에 주관 회사로 참여해 자금 수혈을 도왔다. 당장 먹기에 곶감이 달지만 시장은 이 '백기사'의 등판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세부 조건을 보면 실상은 '구조'라기보다 '고금리 대출'에 가깝기 때문이다.
해당 영구채의 표면 금리는 티웨이항공보다 1%p나 높은 연 6.5%에 달한다. 또한 발행 2년 후인 2027년 7월 29일부터는 매년 2.0%의 가산 금리가 붙는 스텝업 조항도 어김없이 포함됐다. 2년 뒤 상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는 동일하다.
이 영구채가 항공사의 재무 상태를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는 제주항공의 공시 자료가 스스로 증명한다.
제주항공은 지난 14일 공시한 3분기 보고서를 통해 “본 사채(영구채)를 부채로 분류할 경우 2025년 3분기 말 연결 재무제표 기준 부채 비율은 694.7%에서 1131.0%로 상승한다"고 언급했다.
사실상 '합법적 분식회계'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대목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영구채 시한 폭탄' 돌려막기
▲대한항공의 신규 기업 이미지(CI)와 이를 적용한 787-10(HL8515) 여객기(상단)와 아시아나항공 A321-200 neo(HL8399) 여객기가 이륙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하단). 사진=박규빈 기자
이러한 영구채의 덫은 LCC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항공은 올해 3분기 말 연결 부채 비율 333%로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가 안고 가야 할 아시아나항공의 막대한 잠재 부실이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규모의 영구채를 떠안았다.
대표적인 것이 2023년 11월 13일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하고 대한항공이 인수한 3000억 원 규모의 제104회 영구 전환 사채(CB)다. 원활한 인수 후 통합(PMI, Post Merger Integration) 작업 수행·자회사 재무 건전성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이 영구채의 스텝업 조항 발동일은 지난 13일로, 당장 며칠 앞으로 다가온 상태였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지난 11월 5일 이사회를 열어 아시아나항공이 새로 발행하는 3000억 원 규모의 제107회 영구 전환 사채를 인수하고, 이 자금으로 기존 제104회 영구채 전액을 상환받는 안건을 의결해 '이자 폭탄'이 터지기 직전 다급하게 움직여 돌려막기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시간 벌기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부터 기존 4.7%의 금리에 연 3.0% 이상의 가산 금리가 붙을 예정이었던 시한 폭탄의 뇌관을 새로운 영구채를 발행해 급히 제거한 셈이어서다. 새로 발행된 107회 영구채 역시 동일한 구조의 스텝 업 조항을 갖고 있다.
이 외에도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6월 26일 발행한 1750억 원 규모의 제105회 무보증 영구 전환 사채를 끌어안았다.
관계사 에어부산 1000억 영구채 인수한 아시아나항공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 입구 간판(상단)과 에어부산·에어서울 여객기(하단). 사진=박규빈 기자·에어부산·에어서울
대한항공의 지원을 받은 아시아나항공도 관계사와 자회사의 재무 청소에 나섰다. 이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큰 그림 아래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의 '통합 LCC' 출범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풀이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5월 13일, 관계사인 에어부산이 발행한 1000억 원 규모의 제6회 신규 영구 전환 사채를 전액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의 지분 41.89%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 1000억 원의 용처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기존에 발행했던 고금리 영구채 상환이다. 에어부산은 이 자금 중 500억 원을 즉시 투입해 연 12%에 달하는 고금리 부담을 안고 있던 기존 제2회 영구 전환 사채를 상환했다. 나머지 500억 원은 에어부산의 재무 구조 안정화를 위한 운영 자금으로 사용됐다.
아시아나항공이 인수한 이 신규 1000억 원 영구채의 이자율은 5.53%다. 12%짜리 '초고금리 빚'을 '고금리 빚'으로 차환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이 자회사 에어부산의 실질적인 '전주(錢主)' 역할을 하며 모회사의 재무 부담이 자회사로, 다시 모회사로 순환되는 구조가 갖춰졌다.
동시에 아시아나항공은 100% 자회사인 에어서울의 1800억 원 규모 유상 증자에도 참여했다. 이는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에어서울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재무 구조 개선 명령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였다. 결국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지원하고, 아시아나항공이 다시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의 부실을 정리하는 연쇄적인 자금 지원이 이뤄진 것이다.
이처럼 한진그룹 전체가 복잡한 영구채 사슬로 묶인 가운데, LCC 통합이 완료되면 이 재무 부담은 더욱 가중돼 결국 통합 대한항공과 통합 진에어가 함께 안고 가야 할 '공동의 짐'이 될 전망이다.
국토부 “현행 감독 체계 한계"…재무 건전성 수술 착수
▲국토교통부. 사진=정책 브리핑
항공사들의 재무 건전성 약화가 자칫 정비 투자 소홀 등 안전 문제와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보다 못한 주무 부처 국토부가 직접 칼을 빼 들었다. 국토부는 올해 9월 '항공사 재무 건전성 모니터링 고도화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국토부는 제안 요청서를 통해 현행 관리 체계의 명백한 한계를 인정했다.
현행 항공사업법상 재무 구조 개선 명령은 완전 자본 잠식 또는 50% 이상 부분 잠식이 1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에만 발동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 관리 체계는 급격한 재무 상황 악화 상태에서 조치가 가능해 조속한 재무 건전성 회복이 어렵고, 이로 인해 안전·소비자 피해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국토부는 재무 위기 상황에 적시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모니터링 체계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구의 핵심 과제는 현행 자본 잠식률 중심의 사후적 판단 기준에 더해 부채 비율 등 다양한 재무 지표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자본 잠식이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재무적 위험 지표 마련이다.
이처럼 항공업계는 여객 수요 회복이라는 순풍에도 불구하고 영구채라는 암초에 부딪힌 형국이다. 고금리 이자 부담을 감수하며 회계상 자본을 쌓아 올리는 항공사들과 뒤늦게야 이 재무적 착시를 걷어내기 위해 칼을 빼 든 규제 당국의 움직임이 K-항공업계의 미래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