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 이상 갈수도”…환율 공습에 발 묶인 ‘금리 인하’ [전문가 진단]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11.23 16:02

7개월 만에 최고 환율…AI거품론 국내 증시 반영
해외 투자 늘며 달러 수급 확대…“무역수지 넘어”

원화 선호 심리 약화 시 1500원 시대 가능성
한은 금리 인하 제동…“환율, 금융시장 불안 요인”

달러

▲미국 증시에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확산되자 해외 투자 확대 등으로 이미 불안정했던 환율이 7개월 만에 최고 수준까지 높아졌다. 시장에서는 단기간에 1500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커진다. 사진은 달러.

미국 증시에서 인공지능(AI) 고평가 논란이 다시 확산되며 국내 외환시장도 휘청이고 있다. 해외 투자 확대 등으로 이미 불안정했던 환율은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1500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지연에 더해 환율 불안까지 고조되며 한국은행도 기준금리 인하에 발이 묶이고 있다.



환율 1475원 돌파…“1500원 가능성 열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3시 3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75.6원로 마감했다. 전날 대비 7.7원 상승한 것으로, 미국과 중국의 관세 협상 과정에서 환율이 치솟았던 지난 4월(1484.1원) 이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하며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외국인은 이날 2조8000억원이 넘는 매물을 쏟아냈다. 전날 밤 미국에서 AI 거품론이 재부각되며 기술주 중심으로 주가가 크게 하락한 것이 국내 증시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지연 전망과 엔저 심화,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국내 경제성장률 등 대내외 변수가 복합적으로 겹치며 원화 가치가 약해졌다.


최근 6개월간 원달러 환율 추이.

▲최근 6개월간 원·달러 환율 추이.

무엇보다 해외 증시 투자가 확대되며 달러 수급이 늘어난 것이 환율 급등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내국인의 해외투자를 의미하는 대외금융자산은 2조7976억 달러로, 외국인의 국내 투자 규모인 대외금융부채(1조7414억 달러)보다 1조 달러 이상 많았다. 해외투자를 위한 달러 수요 증가가 달러 강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원화 약세의 핵심에는 해외투자가 있다"며 “2022년 말 이후 내국인의 해외 증권 투자 규모가 무역수지 규모를 넘어섰고, 이제 무역으로 버는 돈보다 해외투자 수요가 구조적으로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기에 기업들도 달러를 팔기보다는 계속 쌓아두면서, 무역수지 접근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에 외환당국의 구두 개입도 반짝 효과에 그치고 있다. 시장은 환율이 1480원대를 넘어설 경우 당국의 추가 개입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지만, 수급의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되면 1500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증시가 많이 올랐는데도 원화가 약세인 것은 해외로 나가는 돈이 많아 달러 매수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라며 “펀더멘탈 측면에서 보면 원화 가치는 약 10% 디스카운트돼 있다"고 했다. 이어 “최근 환율에 수급과 심리 영향이 큰 만큼 원화 선호가 더 약해지면 1500원도 열려 있다"며 “다만 심리 변화나 전환점이 있으면 급하게 내려올 수 있는 상황이며, 연말에는 1400~1450원 범위에는 들어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환율은 84%의 확률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며 “일시적으로 1500원, 1600원 수준까지도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수출 회복세가 있지만 대외 변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환율은 당분간 강달러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중장기적으로 외환보유액을 최소 1조 달러 수준까지 확충해 금융안정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계부채에 환율 상승 압력 가중…27일 금리 동결 전망 우세

종합 국정감사 출석해 생각에 잠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지난달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생각에 잠겨 있다.

환율 급등 불안 속에 27일 열리는 한은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를 연 2.5%로 유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앞서 세 차례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이었던 가계부채 부담에 한미 금리차와 환율 상승 압력까지 더해지며 금리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원화 가치 약세가 심화되고 환율을 추가로 끌어올릴 수 있다.


신얼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현재 국내 거주자의 해외 증권 투자는 지속적으로 규모가 확대되고 있어 원화가 과거 수준으로 단시일 내 회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12월 초까지 원화 절상 전환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환율 하락을 위해서는 연준의 12월 금리 인하 가능성 고조, 매파적 연준 인사의 중립적 스탠스 전환, 엔화 등 타 기축통화 절상 등이 수반돼야 하지만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며 “외환시장 부담감은 연말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며, 금리 인하 시점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발표하는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과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높일 것으로 예상돼 금리 동결에 대한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현재 각각 0.9%, 1.6%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10·15 부동산 규제 발표 후 부동산 가격 상승률은 둔화되고 있으나 풍선효과 경계감 등은 여전히 남아있다"며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 상향 조정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한은은 이달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마이너스 아웃풋 갭(경제가 잠재 생산 수준보다 낮게 돌아가는 상태)을 근거로 이달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고 있다. 윤지호 BNP파리바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마이너스 아웃풋 갭이 11월 0.25%포인트(p) 금리 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달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한은은 향후 성장 흐름과 금융안정을 고려하며 추가 인하 옵션을 열어둘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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