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대출도 2008년 금융위기 악몽 재현?…‘데이터센터 리스크’ 전가 나서는 월가

에너지경제신문 입력 2025.12.0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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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에 위치한 구글의 데이터센터(사진=AFP/연합)

인공지능(AI) 거품 우려가 계속해서 고조되는 가운데 월가에서는 AI 데이터센터 대출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들이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를 헤지(위험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다만 은행들의 이러한 기업이 구조적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가 됐던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금융 시스템 전반에 잠재적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AI 인프라 관련 기업들에게 제공한 대출 포트폴리오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인 중요위험이전(SRT·Significant Risk Transfer)와 관련해 잠재적 투자자들과 예비 협의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소식통들은 “현재 진행 중인 SRT 논의가 실제 거래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면서도 “모건스탠리는 데이터센터 대출 관련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다른 방안들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건스탠리는 AI 데이터센터 파이낸싱(자금조달)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온 은행으로 꼽힌다. 지난달엔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플랫폼스의 루이지애나주 하이페리온 데이터센터 개발과 연계된 특수목적법인에 270억달러 이상의 대출과 약 25억달러의 지분 투자 파이낸싱을 주도한 바 있다.


최근에는 테라울프, 사이퍼 마이닝, 어플라이드 디지털 등 기업들이 신규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크본드(고위험·고수익 채권) 발행을 주관하기도 했다.



모건스탠리가 데이터센터 대출 리스크를 외부로 넘기려는 배경에는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자금 차입 수요가 급증하면서 은행권의 익스포저 부담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모건스탠리는 AI 관련 인프라 투자에 2028년까지 3조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가운데 현금흐름으로 충당할 수 있는 자금은 절반 수준에 그치고 나머지는 부채 시장을 통해 조달될 것으로 예측됐다. 대출이 급증하면 은행들이 과도한 익스포저를 떠안게 될 위험이 있다.


현재 시장에서는 공격적인 AI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는 오라클의 부실 위험을 높게 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오라클의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최근 연 1.25%까지 치솟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최고치였던 1.98%에 근접했다. CDS는 채권에 대한 일종의 보험으로, 부도 위험이 높아질수록 가격이 오른다.


이와 관련해 모건스탠리는 오라클의 대규모 차입 구조에 대한 우려가 CDS 급등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 바 있다. 오라클은 지난 9월 18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당시 기준으로 연중 최대 규모 회사채 발행이었다. 이와 별도로 180억달러 규모의 뉴멕시코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파이낸싱, 380억달러 규모의 텍사스·위스콘신 데이터센터 파이낸싱을 받았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도 지난달 175억달러 규모 회사채를 발행한 바 있다.


이렇듯 미국 기업들의 차입 문제가 부각되자 대출에 나선 투자은행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모건스탠리에 앞서 또 다른 투자은행인 도이치뱅크 내부에서도 데이터센터 대출과 관련된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보도했다. AI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 바스켓에 대한 공매도나 합성 구조를 활용한 SRT 상품 판매 등이 방안으로 거론됐다.


SRT는 은행들이 대출과 관련한 신용 익스포저를 줄이기 위해 신용연계증권을 발행해 연기금·헤지펀드 등 기관 투자자들에게 파는 기법이다. 당국의 금융규제로 은행은 대출을 실행할 때마다 일정 수준의 자기자본을 축적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채무불이행 위험을 외부 투자자에게 넘기면 은행은 자본 축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투자자들은 연 10%를 웃도는 고수익을 얻는 대신 기초자산에서 채무불이행이 발생할 경우 손실을 떠안게 된다.


SRT는 은행들의 신용 리스크를 상품 형태로 투자자에게 이전한다는 점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폭제가 됐던 CDO와 구조적으로 비슷한 부분이 있다. 다만 SRT는 대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분산하는 규제형 금융기법이라는 점에서 CDO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SRT의 본질은 '위험 이전'인 데다 기업들의 AI 패권 경쟁이 차입 리스크로 전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경계심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박성준 기자 기사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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