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일 별세한 92세 한만청 전 서울대병원장의 건강법
영상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긍정과 혁신의 '아이콘'
“아침 스트레칭 50분·친구들과 즐거운 만남이 장수 비결"
간암 이어 폐암까지 극복…“검증된 현대의학으로 치료를"
▲2024년 9월, 서울대 의대 영상의학교실 김종효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 심포지엄에 참석한 한만청 명예교수. 사진=박효순 기자
영상의학의 세계적 권위자이며, 서울대병원장을 역임한 한만청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영상의학교실)가 8일 오전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34년 10월 독립운동가 월봉 한기악 선생(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법무위원이자 언론인)의 막내로 태어난 故 한만청 교수는 경기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과 피터 벤트 브리검 병원을 거쳤다.
고인은 혈관조영술, 중재적 방사선학 등 새로운 영상기술을 도입해 국내 영상의학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영상진단 외 혈관조영술 등 비수술적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행동적 방사선과학' 도입을 주장해 국내에서 중재적 방사선학의 기틀을 닦았다.
아울러 전산화 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단층영상기법을 활용한 해부학 교과서 '인체 단면 해부학'(Sectional Human Anatomy)을 국내외에서 출간했다.
이 책은 북미방사선학회(RSNA, 현 세계영상의학회) 학술지 리뷰(서평)에서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고인은 당시 서울대병원장이었는데, 기본적으로 20%는 비판을 하는 것이 'RSNA 리뷰의 정석'이라며 리뷰가 실린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며 즐거워했다.
고인은 혈관조영 및 중재적 방사선과학분야 등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남겼으며 우리나라 방사선과학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였고 대한PACS학회 및 한국의료QA학회 등을 창립했다. 혈관중재영상의학에의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미국영상의학전문의학회(ACR) 명예 펠로우와 북미영상의학회(RSNA) 종신 명예회원으로 추대됐다.
대한의용생체공학회 의공학상, 대한의학회 분쉬의학상, 아시아오세아니아방사선의학회 골드메달 등을 수상했고,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지난 2018년에는 대한의학회 의학공헌상도 받았다. 고인은 은퇴 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로 '한만청 연구기금'을 설립해 후학들 지원에 나섰다.
◇故 한만청 명예교수, 국내 방사선과학을 국제 수준으로 높인 선구자
서울대병원장 재직(1993.5~1995.5) 시에는 세계적 수준의 임상의학연구소를 착공했고 의료정보실과 건강증진센터 등을 신설했다. 주차장 준공, 병원 환경 개선, 환자편의향상위원회 발족 등 연구중심·환자중심 병원을 만드는 기틀을 마련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건립추진단을 발족해 후임병원장이 된 이영우 내과과장을 단장에 임명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한국전쟁을 몸소 겪었던 고인에게 64세이던 1998년에 암 선고라는 고비가 찾아왔다. 14㎝의 간암이 발견돼 간이식의 대가인 서울아산병원 외과 이승규 교수의 집도로 수술을 받았으나 한 달여 후에 폐암으로 전이된 것이 발견돼 말기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의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특유의 긍정적 사고와 건강한 생활습관, 그리고 의학적 치료 덕에 항암제가 특효를 발휘함으로써 기적적으로 완치됐다. 이후 자신의 투병기(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를 펴내는 등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료 신뢰 구축과 건강한 삶의 가치를 몸소 실천하며 암과 싸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희망을 줬다.
▲서울대병원장 시절의 한만청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그는 항시 부지런한 자세로 긍정과 혁신의 바람을 일으켰다. 출처=서울대병원
이후 그의 건강법이 화제를 모았다. 아침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일어나자마자 45~50분 정도 스트레칭을 매일 한다. 우선 누운 자세에서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는 '잼잼', 발만 직각으로 구부렸다 펴는 것, 항문을 조였다 푸는 것, 회음부 마사지를 100번씩 한다. 이어 손을 올리고 숨을 마음껏 들이마시고 버텼다가 손 내리면서 숨뱉기, 무릎 모아 위아래로 뒹굴며 숫자 열까지 세기를 10번씩 한다.
그리고 자전거 타기 50번, 발바닥 치기 50번, 등과 배만 올리기 20번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일어나 선 자세로 등을 굽히고 팔을 뻗는 동작 스트레칭 50번, 한쪽 팔을 반대로 끼고 돌리는 스트레칭 좌우 각 10번, 무릎 굽히기 운동 50번으로 마무리한다.
매일 신선한 재료로 만든 밥상을 맞이하는데, 식생활에서 3가지 원칙을 지킨다. 첫째 신선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 둘째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셋째 짜게 먹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들과 자주 만나 즐겁게 식사를 한다. 70대 후반, 80대 초반까지도 골프를 일주일에 1~2회 정도 꼭 쳤다.
그는 자칭 '활자 애호가'다. 독서량이 대단하다. 2012년 당시 일간지 3개, 월간잡지 3개(일본 1개 포함), 미국·일본·유럽에서 오는 학술잡지 4개, 동창회보 3개, 신간 서적 한 달에 3~4권 등을 보며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모르는 조어나 신조어는 꼭 메모하고 외웠다. 친구나 후배, 제자들에게 질문으로 써먹기 위해서다. 바둑TV도 즐겨보고 신문은 1면부터 끝까지 세세히 읽는다. 이 밖에 드라마 (녹화해서)보기도 즐겼다.
◇말기암 판정 받고 완치 기적…“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
고인은 특히 “암과 싸우지 말라"고 주변에 당부하곤 했다. 한 교수의 '암 친구론'은 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암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논리다. 암을 언젠가는 돌려보낼 수 있는 친구처럼 여기고, 의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을 믿고, 여유와 자신감을 갖고, 의사에 대한 신뢰를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교수의 암 극복은 눈물겨운 고통과 각고의 노력, 그리고 체계적인 전략전술이 녹아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지론은 '현대 의학을 대체할 암 치료법은 없다'이다. 암 치료 과정에서 검증 안된 비방이나 대체요법, 민간요법에 의존하는 것을 가장 경계하라고 강조했다. 그로 인해 치료 기회를 놓치면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인은 의학자이자 교수로서 미래지향적인 사고로 조직을 발전시킨 것은 물론, 후학을 가르치는 큰 스승으로 평생을 일관하는 삶을 살았다. 삶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더욱 단단해졌고, 그 경험을 많은 이들에게 실천으로 보여주며 희망과 용기를 건넸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대 의대 영상의학교실 김종효 교수(클라리파이 대표)의 정년퇴임 기념 심포지엄 및 기념식과 만찬에 참석했다. 91세의 나이에도 정정한 모습으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원고 없이 '일사천리 달변' 축사를 해서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고인은 이 자리에서, 인공지능(AI) 기술로 CT 방사선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솔루션의 육성과 발전에 업계뿐 아니라 보건당국 및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큰형 고 한만춘 씨는 연세대 초대 이공대 학장을, 작은형 고 한만년 씨는 출판사 일조각 대표로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을 지냈다. 조카 한성구와 한준구는 각각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와 영상의학과 교수를 지냈다.
유족으로는 아내 김봉애 씨, 딸 숙현·금현·지현 씨, 사위 조규완(이화산업㈜ 회장)·백상익(풍원산업㈜ 대표)·장재훈(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0일 오전 7시이다. 유해는 서울시립승화원을 거쳐 강원도 원주시 선영에 안장된다.

